아침에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오늘은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었다.
세면대로 가 영양기 쭉 빠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라앉혀본다.
영 생김새가 못마땅하다. 아침에는 정말 가장 못난이다.
어푸어푸 물이 닿으니 조금은 볼만해졌다.
피부야 고와져라 고와져라 문질문질 화장품을 고이 발라주고, 팔을 휘휘 저으며 바디미스트도 뿌린다.
오늘도 여지없이 집안에만 있을테지만, 나 좋으라고 뿌린다. 한달 전 매장에 나갔다가 시향해보았던 비누로 유명한 브랜드의 바디미스트다. 설명으로는 애인 혹은 남편과의 달콤한 밤을 위한 향수? 라고 대놓고 써있긴 하다만... 그 의도와 다르게 쓰인들 뭐 어떠랴. '내 코만 행복하면 됐지.' 한다.
사부작 사부작 집안일 하다 보니 정오가 지났다.
어제 주문한 디퓨져가 도착했다. 비어 있는 병에 리필 용액을 따를 준비를 하고 스틱을 꺼내왔다.
온 몸이 추욱 젖어 있으면서도 향을 내뿜지 못하더니, 새 스틱으로 쓱 갈아주자마자 신난다고 향을 한껏 발산한다. 새로운 향으로 집 분위기가 은은하게 채워지니 기분이 좋다.
책이 가득 쌓아올려진 내 방에는 책방의 향기라는 이름을 달은 향을 놓았다. 사춘기 아이의 방에는 새콤 향긋한 블랙체리의 향을 담고, 거실에는 토마토와 바질의 향기가 담긴 싱그러움을 놓았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가 알아채고 새침하게 한 마디 툭 던지더니 제 방으로 쓱 들어간다.
요즘 멋 부리기에 힘쓰기 시작한 아이의 방에서는 날마다 바디미스트 향이 배어있다. 갑자기 작작 뿌리라고 잔소리했던 어느날의 내가 떠올라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래된 디퓨져 스틱을 꺼내 버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푹 담겨져 온 몸을 향기액으로 뒤덮었는데도, 시간이 묵고 묵혀지면 더 이상 바깥으로 향이 나질 않는구나.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던 무엇인가를 멈추면, 가꾸기를 멈추면, 더 이상의 노력이 없으면, 조금이라도 전진해가는 발전이 없으면 그 사람만의 독특했던 매력이 안타깝게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혹시 나도 무향인 사람이 되어 버린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설마 악취가 나기 시작한 건 아니겠지 하면서 눈썹꼬리가 하강하고 만다.
행여나 그럴까봐 아침에 보았던 얼굴이 된다. 영 내 생김새가 못마땅하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본다.
눈을 좀 더 크게 떠본다.
아침에 뿌렸던 바디미스트를 다시 칙칙, 사정없이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