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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Sep 13. 2024

향기를 발산하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오늘은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었다.

세면대로 가 영양기 쭉 빠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라앉혀본다.

영 생김새가 못마땅하다. 아침에는 정말 가장 못난이다.

어푸어푸 물이 닿으니 조금은 볼만해졌다.

피부야 고와져라 고와져라 문질문질 화장품을 고이 발라주고, 팔을 휘휘 저으며 바디미스트도 뿌린다.

오늘도 여지없이 집안에만 있을테지만, 나 좋으라고 뿌린다. 한달 전 매장에 나갔다가 시향해보았던 비누로 유명한 브랜드의 바디미스트다. 설명으로는 애인 혹은 남편과의 달콤한 밤을 위한 향수? 라고 대놓고 써있긴 하다만... 그 의도와 다르게 쓰인들 뭐 어떠랴. '내 코만 행복하면 지.' 한다.


사부작 사부작 집안일 하다 보니 정오가 지났다.

어제 주문한 디퓨져가 도착했다. 비어 있는 병에 리필 용액을 따를 준비를 하고 스틱을 꺼내왔다.

 몸이 추욱 젖어 있으면서도 향을 내뿜지 못하더니, 스틱으로 갈아주자마자 신난다고 향을 한껏 발산한다. 새로향으로 집 분위기가 은은하게 채워지니 기분이 좋다.

책이 가득 쌓아올려진 내 방에는 책방의 향기라는 이름을 달은 향을 놓았다. 사춘기 아이의 방에는 새콤 향긋한 블랙체리의 향을 담고, 거실에는 토마토와 바질의 향기가 담긴 싱그러움을 놓았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가 알아채고 새침하게 한 마디 툭 던지더니 제 방으로 쓱 들어간다.

요즘 멋 부리기에 힘쓰기 시작한 아이의 방에서는 날마다 바디미스트 향이 배어있다. 갑자기 작작 뿌리라고 잔소리했던 어느날의 내가 떠올라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래된 디퓨져 스틱을 꺼내 버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푹 담겨져 온 몸을 향기액으로 뒤덮었는데도, 시간이 묵고 묵혀지면 더 이상 바깥으로 향이 나질 않는구나.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던 무엇인가를 멈추면, 가꾸기를 멈추면, 더 이상의 노력이 없으면, 조금이라도 전진해가는 발전이 없으면 그 사람만의 독특했던 매력이 안타깝게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혹시 나도 무향인 사람이 되어 버린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설마 악취가 나기 시작한 건 아니겠지 하면서 눈썹꼬리가 하강하고 만다.

행여나 그럴까봐 아침에 보았던 얼굴이 된다. 영 내 생김새가 못마땅하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본다.

눈을 좀 더 크게 떠본다.

아침에 뿌렸던 바디미스트를 다시 칙칙, 사정없이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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