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장프로젝트 Jul 14. 2021

전혀 귀찮지 않은 환경 이야기

지구인 2호 작가 귀찮

눈앞에 맞닥뜨린 환경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혀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프로젝트는 일상 속에서 환경에 진심을 다하는 인플루언서를 ‘지구인’이라 칭하기로 했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추구하는 작가 귀찮(@lazy.drawing)의 전혀 귀찮지 않은 친환경 라이프를 들어봤다.


@lazy.drawing

Q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쓰레기 분리수거가 쉽지 않은 시골에서 살게 되면서에요. 서울에 살 땐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빌라 앞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으면 끝이었어요. 비닐장갑을 끼고 코를 막으며 최소한의 손가락만 써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왔는데 집 주변 어디에서도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결국 음식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 쓰레기를 모아두는 장소에 버렸는데 며칠 뒤 다른 쓰레기는 모두 수거가 되었는데 우리집 쓰레기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어요. 길고양이들이 봉투를 뜯어 놓은 바람에 아주 처참한 모습이었죠.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워낙 시골이라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이 안 들어온다고 했어요. 사실 시골 어른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내지 않고, 생겨도 소나 닭의 배설물에 섞어 거름으로 쓰니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이 올 필요가 없죠. 재활용 쓰레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수거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했어요. 면사무소에 문의하니 재활용 쓰레기는 분리해서 투명한 봉투에 버리면 수거 업체가 가져가 다시 분리한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그것이 지금 제가 있는 곳에서는 최선이더라고요. 아무튼 이런 쓰레기 배출이 어렵고 불편해진 바람에 전반적인 저의 생활과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Q 환경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 중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순환’같아요.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대부분의 물건이 재활용 꺼리죠. 비닐이 남으면 잘 오려 두었다가 상추나 오이 모종을 심기 전 비닐 멸칭을 해 풀이 자라지 않게 하죠. 음식물이 남으면 대부분 거름으로 쓰는데, 저 역시 미생물 음식물 처리 기계를 구입해놓고 텃밭 거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고가의 아이템이었지만 쓰레기가 흙으로 돌아가는 걸 체험하면서 큰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무엇인가에 소비를 하고 그 소비 과정의 끝을 볼 수 있는 일이 흔하진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소비를 할 때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순환’이고, 나 스스로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만들자 하는 마음이에요. 예를 들어, 전에는 100% 순환을 생각해 병맥주만 마셨어요. 그리고 맥주병을 모아 슈퍼에 가져가 100원씩 받고 팔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자동차 기름, 병이 깨졌을 때 나오는 쓰레기 등을 생각하니 오히려 순환에 더 좋지 않은 것 같았어요. 이제는 병보다 재활용률은 낮지만 내가 잘 씻어서 쉽게 배출할 수 있는 캔맥주를 선택해요.  


Q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환경을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육류 섭취를 자랑하지 않는 것.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고는 받지 않고 도움이 되는 광고는 부족해도 해보는 것. 처음에는 쓰레기처리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었는데 막상 환경에 관심을 갖고 보니 공장식 축산 활동이 온난화에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평소 고기나 우유 등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기에 육류 섭취를 줄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그보다 어려운 게 고기 먹는 걸 자랑하지 않는 거였어요. 휴게소에 가면 소떡소떡을 먹는 게 자랑이었고, 기쁠 때나 축하할 일 있을 때 ‘수고했어. 오늘은 치맥 어때?’와 같은 ‘고기’를 이용한 표현이나 이야기를 은연중에 많이 사용하고 있었어요. 흔하고 공감하기 좋은 표현이지만 이런 표현은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환경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고는 받지 않고, 같은 맥락으로 환경 관련 콘텐츠에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편입니다. 

환경부(@ministry_environment)와 함께 연재 중인 귀찮의 환경 웹툰. @lazy.drawing

Q 친환경 라이프를 위한 실천, 고되고 힘들 때도 있을 텐데요.


좋아서 하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어떤 상황이 와서 못하게 되면 슬프고 우울할 것 같아요. 친환경 라이프는 시작 전에는 귀찮지만 막상 실천하고 나면 오히려 더 편한 일이더라고요. 앞서 말한 음식물 처리기도 그랬고, 올해 들어 시작한 천생리대 쓰는 일도 그동안 왜 안 썼나 싶을 정도로 좋아요. 내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으니 고된 일이 아니죠. 오히려 그동안 사용하고 버려진 일회용 생리대를 생각하면 너무 암울해요. 저는 쓰레기 분리배출을 몰아서 하는 편인데, 날 잡아 하나씩 분리하다 보면 개운하고 생각이 가벼워져요. 프리랜서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압박에 시달릴 때가 있는데, 몸을 쓰며 분리배출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져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Q 팔로어가 많은 편이라 환경 이야기를 할 때 타인의 시선이 의식되고 부담스럽진 않나요?


조금 더디더라도 서서히 함께 변하길 권해요. 사실 분리배출에 관한 이야기는 욕먹을 일이 많이 없어요. 그런데 비건과 논비건 같은 민감한 주제는 나의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요. 환경을 위해 육류를 소비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관련업계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동물성 식품을 섭취해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채식을 좋아해요.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자주 채식하는 사람이, 소비 앞에서 환경을 떠올리는 사람이 조금씩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Q 친환경 라이프를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껏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살기 위해 무자비할 정도로 그 주변을 희생시켜온 것 같아요. 덕분에 여러모로 살기 편해졌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무엇이든 주문하면 다음날 집 앞에 가져다주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의 편리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이 따르지 않길 바라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너무 많이 상처를 주며 살아왔으니 이제라도 보듬어가며 같이 살면 좋겠어요. 경제적으로 따지면 가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그 가치 없는 일에 공감하고 아파하고 함께하는 이들이 멋져 보여요. 무분별한 행동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희생, 상처 없이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훨씬 가치 있고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Q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노력, 윤리적 소비, 제로웨이스트 등 친환경 실천을 이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더 멋있어지고 싶은 마음에서요.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과 동물, 지구를 염려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제게 멋진 일이 되었어요. 환경을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공생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Q 환경을 위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국토대장정?(^^). 꼬질꼬질하더라도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걷고 싶어요. 꾸밀 것 많고, 소비할 것 많은 세상이잖아요. 그 와중에 그냥 최소한의 짐만 싸서 꾸밈없이, 소비없이 걸어보고 싶어요. 노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노곤함에 잠들고, 걷다 만난 귀한 밥집에서 남김없이 맛있게 먹고요. 호화로운 호캉스나 해외여행 말고 그냥 걷기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걸어 다니는 건 환경을 위해서도 좋겠지만 사실 저 자신한테 가장 좋은일이죠.


Q 이제 막 환경보호에 의지를 갖고 친환경 라이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없어도 괜찮은 삶을 자랑해보세요. 저는 어떤 일에 지속성이 있기 위해서는 그만한 애정과 자존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나 스스로 이 일이 제법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혼자 생각하면 그게 아무리 대단한 일이더라도 곧잘 잊어버리거든요. 그래서 멋진 일을 하고 자랑하면 좋겠어요. 샴푸 없이 비누 하나로 씻기를 해결한 경험, 2주간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야무지게 요리해 먹은 경험, 깨끗하게 분리수거 한 모습 등등. 그런 것들을 자랑삼아 올리는 일이 별게 아닌 것 같아도 자존감을 높여주거든요. 나 스스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을 계속 멋지다고 말해주다 보면 주변에서도 그렇게 봐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자존감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다짐들을 더 오래, 재미있게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고, 주변 사람들이 따라 하게 되면 더 좋고요. 소소한 거라도 좋은 일을 하면 꼭 자랑해보세요.  

@lazy.drawing


지구인 ‘귀찮’ 시작하는 지구인에게 추천해요

도서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엘리), 아나가키 에미코

시작하는 지구인은 물론 지금의 저에게도 용기와 실천 의지를 북돋아주는 멋진 책이에요. 지금까지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작가 본인이 얼마나 전력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그 사고의 원인은 지진이나 설계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부족함 없이 양껏 전기를 써 대던 과거의 자신이 진짜 원인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며 전력 없이 살아보려는 일종의 보고서형 에세이입니다.

사실 저는 전기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소비하는 전력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날이 오길 늘 고대해요. 빌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을 보면서 무엇보다 전력 부문에서 탈탄소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전력 없이 살아가기’는 저의 생각들과 반대되는 책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렇게 추천하는 이유는 ‘적정함' 때문이에요. 온난화 걱정 없이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필요한 만큼만 소중하게 소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거든요. 전기를 아끼기 위한 행동들이 좀 찌질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공감이 가고, 이나가키씨처럼 전력을 과감하게 줄일 수는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찾아 실천하게 된답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시간의 힘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그걸 지금껏 왜 모르고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고요. 가령 냉장고를 없애서 음식물 보존이 힘들어지자 소쿠리에 나물을 담아 반나절 건조시켜 먹는 장면은 저에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태양과 바람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하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이미 자연 속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책입니다.


지구인 2호 귀찮(@lazy.drawing) 작가는
문경에 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피해 입히지 않으며
공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lazy.drawing

정리 박선영 기자 



작가의 이전글 #브랜드의친환경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