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일도 일도씨패밀리 대표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는 가게가 늘었다. 통계를 넘어 거리에서 불 꺼진 가게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명한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도씨곱창, 일도씨닭갈비 등 9개 브랜드, 총 20개 매장을 운영하며 일각에서 '제2의 백종원'이라 불린 일도씨패밀리 김일도 대표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프 주는 닭갈비, 프렌치 스타일을 입힌 찜닭 등 익숙한 메뉴에 '의외성'을 더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찾는 이가 확 줄었다. 최근엔 입점한 매장 건물주가 임대료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또 한번 골머리를 썩었다.
물 속에서 코 끝까지 물이 올라왔다가
발버둥 쳐 겨우 목 아래로 내려갔다
왔다갔다 하는 상태예요
요즘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한 김 대표 대답이다. 비관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10년 넘게 장사하면서 숱한 위기를 겪었다. 이번엔 좀 더 타격이 크지만 따지고 보면 장사가 안 될 이유는 너무나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메르스, 조류독감 등 예상치 못한 변수는 물론, 궂은 날씨와 좋은 날씨 모두 손님이 오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 버틸 수 있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라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Q) 스물 여덟, 어머니가 하시던 곱창집 2호점을 내면서 외식업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부모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쪽 일(외식업)을 하겠다, 마음의 결정이 나 있었어요. 밤 늦게까지 고생하긴 했지만 돈은 잘 버시는 거 같았거든요. 회사 가는 것보다 이게 낫겠다 싶었어요. (웃음) 외식업에 대한 조기 교육을 받기도 했고. 가족이 외식을 가서도 부모님이 “이 식당은 자리가 좋다” “여긴 가격대가 좀 달라져야겠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보면서 장사에 대한 인사이트도 갖게 된 것 같아요.
Q) 곱창으로 시작해 닭갈비, 찜닭, 두부 등 9가지 다양한 브랜드를 만드셨는데, 곱창 2호점이 아니라 다른 메뉴로 확장한 이유가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건데, 곱창이라는 메뉴 때문에 외식업계 모임에서 무시 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은 가수 화사 덕분에 곱창 대란이 일어나는 등 곱창 이미지가 좀 달라졌지만 그땐 달랐어요. 제가 어려서 더 그렇게 느꼈던 걸 수도 있고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는 대중성 때문이에요. 곱창은 안 먹는 사람도 있고, 매일 먹는 음식도 아니잖아요? 고민하던 차에 점심 장사를 위해 닭갈비를 팔기 시작했는데 대박이 났어요. 사흘 만에 줄을 서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닭갈비집을 방배동에 냈죠. 간판도 안 달렸는데 공사 하는 중에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Q)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요? 어떻게 문을 열자마자 대박이 났을까요?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정석대로 만들었어요. 외부에서 제품 받아서 공산품을 쓰는 게 아니라 저희가 소스, 반찬 등을 다 만들어서 손님 상에 냈어요. 힘들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장사하는 방식을 그대로 배운거죠. 곱창집에서도 그렇게 했지만, 닭갈비에서 손님들이 더 잘 알아주시더라고요.
Q) 닭갈비는 체인도 많은데..
닭갈비가 유행을 타는 메뉴인 것 같지만 장벽이 낮은 음식이라 수요가 항상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그걸 ‘대중성’이라고 정리했어요. 앞으로 가게 문턱을 넘기 쉬운, 대중성 있는 음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이후 메뉴 선정 기준으로 삼았어요.
Q) 혹시 실패한 브랜드도 있나요?
일도씨찜닭이요. 두 번이나 폐점했어요. 조류독감, 계약만료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시작할 때 콘셉트가 과한 게 문제였어요. 평범함을 추구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지만, 그땐 특별함에 힘을 줬거든요. 프랑스 요리 코코뱅에서 영감을 받아서 찜닭에 프랜치 콘셉트를 입혔어요. 코스 요리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자리에서 끓여 먹는 찜닭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7~8번 콘셉트를 바꾼 거 같아요. 찜닭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니까 어리둥절해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양복 입고 와야 할 것 같다" 말씀하시기도했어요.
실패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될 때까지 하다보니 결국 자리를 잡긴 했지만 1년 반 정도는 적자를 심하게 봤어요. 폐점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Q) ‘대중성’ ‘평범함’을 강조하시는데, 최근에는 ‘인스타맛집’이란 말이 존재할 만큼 튀는 구석이 있어야 잘 알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노포가 아니라 신생 음식점이라면 더더욱.
저도 SNS에서 유명하다는 맛집 리스트를 작성해 다니곤 했어요. 그렇지만 자주 가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자주 가는 먹는 메뉴를 적어봤어요. 설렁탕, 덮밥 등이더라고요. SNS 올라오지 않지만 먹는 횟수로 보면 그런 음식들이 더 인기 있는 거죠. 트렌디한 브랜드를 만들기 보다는 오래갈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SNS에서 회자되진 않지만 신사동 곱창집은 10년이 됐고, 방배동 닭갈비 1호점도 벌써 8년이 됐어요. 평범하고 편안하게 먹는 음식을 만들지만 여기에 살짝 일도씨만의 엣지를 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평타’ 정도의 맛집을 찾아요.
엄청 맛있기보다는 실패하지 않기를 원해요.
이제는 인스타그램에 나온 맛집들도 다 돌아봤잖아요.
유행하는 맛이 그렇게까지 큰 기쁨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동네에 있는 괜찮은 맛집,
적당한 맛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파는 사람들> 中 김일도 대표 인터뷰 부분
Q) 엣지를 더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일도씨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죠. 맛만으로는 차별화가 힘들어요. 세상에 맛있는 설렁탕집이 얼마나 많아요. 더 맛있는 설렁탕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메뉴를 개발할 때 결핍을 채우는 방식을 택해요. 먹으면서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는 거죠.
이스트빌리지에선 돈가스와 비빔밥을 파는데 언뜻 안 어울려 보이지만 조화를 생각해 만든 거예요. 돈가스를 계속 먹다 보면 물려서 열무김치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리고 돈가스 집에선 보통 수프를 주는데 그게 오히려 느끼함을 가중시키더라고요. 그래서 된장찌개를 주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죠. 합쳐보니 비빔밥에 된장찌개가 됐고, 그래서 돈가스를 같이 팔게 됐어요.
Q) 처음 쓰신 책 <사장의 마음>에서 “여기는 부추무침 안 주잖아요?”라는 손님 말에 나아갈 방향을 잡았다고 하셨는데, 비슷한 맥락인가요?
처음 곱창집을 열었을 때 일인데, 진짜 좋은 재료 가져다 만들고 우리집이 더 맛있는 거 같은데 손님들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물었더니 “부추무침을 안 준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큰 깨달음이었죠. 그동안은 메인인 곱창만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손님들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에서 차이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누군가는 고기집에서 곁들여 나오는 소금을 더 중요시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후 구성에서 색다른 포인트를 주기 시작했어요.
다른 닭갈비집처럼 반찬으로 동치미를 주는 게 아니라 수프와 피클, 코울슬로를 주는 거죠. 일도씨만의 특징이 생기면 이름은 까먹어도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그때 닭갈비 먹을 때 수프 주던 거기 갈까?”라고 얘기하게 되겠죠. 브랜딩 차원에선 실패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억엔 남는 거니까요.
Q) 코로나19 얘길 안 할 수가 없네요. 매장이 20개나 되니 더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힘들죠. 코로나가 터지고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분위기가 안 좋아져 손님이 확 줄었어요. 그나마 단골이 많은 매장은 그나마 좀 버텼어요. 아무래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곳만 가다 보니까 시내 보단 집 근처 매장은 찾으시더라고요. 5~6월엔 회복되나 싶었는데 2.5단계가 되니까 이건 장사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장사를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배달을 시작했어요. 사실 제가 오프라인 부심이 좀 있었거든요. (웃음) 그간 왜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메르스 때 온라인으로 확장하거나 아예 넘어간 곳들도 주변에 많아요. 그때도 저는 버티면서 오프라인에서 제대로 해보겠다 버텼어요. 단골들이 있으니까 된다고 믿은 거죠. 근데 이번에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배달에 나선 거죠. 지금은 전체 매출의 30%를 배달이 차지해요.
Q) 배달 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몇 년 전부터 테스트를 해왔어요. 배달뿐만 아니라 밀키트, HMR 등 온라인 진출까지 다 준비를 해놨죠. 이번에 또 한번 느꼈어요. 목표 매출 이런 계획은 의미 없다는 거요. 어떤 상황에서든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Q) 프랜차이즈는 하지 않고, 현재 직영점만 운영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었어요. 일도씨닭갈비는 문의도 많이 왔고요. 가게 하나만 해보곤 가맹점이 잘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상권 공부할 겸 기존과 다른 특징이 있는 지역에 매장을 냈어요. 그동안은 거리에만 매장을 냈는데 날씨 등의 영향을 많이 받더라고요. 벚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면 나들이를 가서, 여름엔 너무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손님이 없어요. 그래서 몰에 입점해봤죠.
Q) 가맹 사업은 아예 생각이 없으신건가요?
언젠가 준비가 되면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제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아직은 제가 손님은 음식을 드시러 오는 분들이지, 가맹점주가 아니거든요. 가맹사업을 시작하면 그들에게 제가 상황별로 어느 정도 솔루션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맹점을 내게 되면 그동안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게 제일 먼저 내주고 싶은데, 괜히 냈다가 그 친구들이 망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아요. 지금은 여러 곳을 운영하면서 그런 노하우를 쌓고 있는 과정이에요.
힙하디 힙한 것들 속에서 힙해지지 않는 것이
진짜 힙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도처에 눈을 혼탁하게 만드는 가짜 마케팅이 널려 있고
그것에 속아 우르르 몰려갔다가 쭉 빠지는 시대지만,
오랜 시간 묵묵히 단골들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는 가게에 앉아 있으려니,
나도 이런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장의 마음>(김일도 지음) 中
Q) 일도씨패밀리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좀 다른 얘긴데, 가끔 손님들 사이에 껴서 얘길 들을 때가 있어요. 귀한 피드백은 거기에 다 있죠. 언젠가 가게 앞에 있는데 모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까 말까 대화를 하면서 ‘일도씨’란 이름에 대해서 토론하더라고요. 딸은 “사장 이름이 일도일 것 같다”고 했고, 어머니는 “숙성 온도나 임계점이 아닐까” 말씀하셨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저희는 매장 내부에 ‘우린 이런 브랜드예요’ 강조해놓지 않아요. 고객들이 알아서 해석하길 원해서요. 그냥 각자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Q) 그럼 기억에 남는 것이 목표?
앞으로는 저희의 평범함이 더 특별함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래오래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스며들어가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인터비즈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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