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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lue Aug 02. 2024

“한 번 생겨난 원한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스포일러 주의]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리뷰입니다. 내용 스포는 크게 없지만 모든 정보를 피하시면 읽지 말아 주세요.


원한이 모두 악의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원한은 악의로부터 비롯된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더 큰 힘을 가지고 싶다는 서민적인 욕망이 덩치를 키우면 악의를 지닌 원념이 된다.


그리고 원혼이 주술사를 거꾸로 먹어치우는 것처럼 원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거대한 비극을 재앙처럼 몰고 온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원념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생들의 고혈을 끊임없이 빨아먹으며 덩치를 키워갔던 그 욕망과 집념. 피로 물든 거대한 벚꽃.


사죄를 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기에 선대가 지은 대죄와 그에 동조한 사람들이 느끼는 죄악감은 핏줄을 타고 끈질기게 후대로 이어져왔고 그렇기에 그들의 혈관을 타고 도는 피에는 여전히 방울마다 원한이 서려있다.


그러나 반전을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한번 더럽혀진 핏줄은 속죄될 수 없다는 특유의 무기력한 정서가 이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키타로의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는 오히려 그 한계를 넘어 용기 있는 대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이다.


누군가 이 저주를 끊어야 한다면 그건 선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라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오래된 약속이라고 게게로는 말한다.


더욱이 이런 테마의 작품들이 자주 선택하는 다수의 타락한 자들과 소수의 선량한 자들이라는 전선은 군국주의 광기로 불타올랐던 제국에 저항했던 드문 사람들의 의지를 소환하지만 결코 이들에 대한 면죄부로는 작동하지 않는데 이 발란스야말로 작품 전체에 특유의 비애감을 스며들게 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게게게 일행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죄악을 결코 타자들의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스포일러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과거를 책임지기 위해 거대한 굿판을 벌인다.


외면하거나 면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정화하는 속죄와 대속의 작업.


이들은 한 번 생겨난 원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의 억겁 같은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고 기어코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낸다.


죄를 용서받고 과거를 미래로 뒤집기 위해 내리는 소수 사람들의 이 결단야말로 게게게의 수수께끼가 내놓는 가장 용감한 해답이다.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아직 안 보신 분들 꼭 보세요. 수작입니다.

왓챠에서 개별 구매로 보실 수 있어요.

p.s

게게게 너무 좋았다.


책임을 후대나 선대에 미루지 않는 선택이 이 작품을 뒤틀린 내용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건강하게 만들고 있어!


그동안 귀칼이나 에반게리온 같은 데서 느껴지는


후대여 이제 (우리 과오에 대한) 책임을 (네가) 지거라!!


이런 정서가 거의 없다.


아 후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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