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않는 불멸을 넘어 비로소 생의 가치를 이해하다.
주인공의 불멸성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정상성과 배치되는 특질이기에 필연적인 핸디캡이기도 하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생을 소중하지 않은 어떤 것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이다.
아홉 번의 기회가 있는 캣우먼과 단 한번뿐인 삶을 사는 사람은 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많은 히어로들 사이에서도 필멸인 존재와 불멸인 존재 간 인식의 간극은 좁히기가 매우 힘든 편이다.
로건은 불멸이기에 죽음에 대한 감각이 없다. 죽음을 모르기에 역설적으로 생을 알지 못한다.
반면 뛰어난 정신능력에 비해 취약한 육체를 지닌 자비에 교수는 삶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약하기에 오히려 거대한 열망, 살아가고 유한한 시간을 서로 나눈 다는 것, 그리하여 함께 집을 만들고 약하고 연한 것들을 지킨다는 그의 목표는 어쩌면 그의 취약성으로부터 비롯된 강인함일 것이다.
영화 <로건>에서 자비에는 정신없이 쫓기는 로건에게 지금 함께하는 이 순간의 생을 만끽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 자신 역시 비의도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에에게 생이란 악인과 선인을 나누지 않고 공평하게 내려지는 축복이었기 때문에.
반면 로건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의 순간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매번 실패하며 철저히 공동체에 소속되길 거부한다.
자비에가 그토록 오래 울버린이 합류하길 소망했음에 도 불구하고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웨이드가 각 유니버스의 울버린들을 찾으러 다녔을 때, 거의 모든 우주, 거의 모든 시공간에서의 울버린은 완벽히 혼자 있다. 술집이나 정비소, 뒷골목, 은신처에서 마주한 울버린은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데드풀을 매번 죽여버린다.
그런 그가 영화 <로건>에 이르러 불멸성을 박탈당함으로써 비로소 생이라는 감각을 이해한다. 최후의 순간을 마주하자 울버린은 자비에 교수가 언제나 이야기해 왔던 바로 그 충만한 삶의 시간이 자신에게도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So this is what it feels like.”
이런 기분이구나.
는 로라를 마주한 그의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멸을 대가로 내어주고 드디어 도달할 수 있었던 생에 대한 완전한 소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서야 그가 온전한 삶의 기쁨을 누렸다는 게 여전히 마음 아프지만 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의 필멸성이 필요하다는 진리가 영화 <로건>에 있다. 그건 자비에와 로건이 우리에게 함께 알려준 귀 기울일 가치가 있는 진실이다.
반면 데드풀은 매번 죽는 존재다. 그 어떤 히어로보다 죽음과 가까운 존재, 힐링팩터에도 불구하고 웨이드는 상시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뇌 역시 엄청난 고통과 사멸하는 세포들로 잠식된 상태라 웨이드의 정신 역시 온전치 않다. 착란, 환영, 분열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와 투쟁하며 그럼에도 웨이드는 순간의 생을 움켜쥐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상대적으로 울버린보다 더 주위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역시 영겁에 가까운) 시간들을 의외로 충만하게 보내는 듯한 인상은 그래서일 것이다.
이 차이가 무척 흥미롭다.
고통으로 점철된 데드풀이 울버린에 비해 더 쾌활하고 더 많은 유머를 구사하는 것도 아마 이런 연유가 아닐까 싶고.
어찌 됐든 불멸자로서 끊임없는 공허와 회의에 시달리면서도 울버린은 끝내 그 모든 순간 자신을 옭아매려 했던 운명에 저항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언급되어지 듯, 그는 언제나 잘못된 결정을 반복하는 틀린(wrong) 인간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만큼은 흘려보내지 않고 반드시 손에 거머쥐는 영웅이었다.
폭력의 도구로 자신을 이용하고 생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려 드는 그 모든 것들과 싸우길 멈추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전언은
“그들의 뜻대로 살지 마.”
불멸자에게 도래한 유한성이 허무의 심연에서 끌어올린 삶에 대한 가장 자유롭고 정직한 가치다.
이 완벽한 결말을 보여준 영화 <로건>이 울버린의 마지막을 가장 울버린답게 보여줬다고 생각하기에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울버린을 예토전생 시키는 게 괜찮을 까 했는데 가볍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울버린처럼 온전한 마무리 없이 사라진 히어로들의 클로징이 예우 있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장 가는 길에 뜬금없이 로건이 생각나서 <로건>과 <데드풀과 울버린>을 섞은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