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hort S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lblue Oct 14. 2023

[단편] 김 씨의 오지랖

502호와 602호

말하자면 그는 아주 시끄럽고 오지랖이 넓기로는 동네에서 소문이 난 전형적인 50대 아저씨였어. 이름도 발에 차이는 성인 김 씨. 김 씨는 휴일이면 친구들을 모아 떠들썩하게 낚시를 가고 낚아온 물고기로 매콤한 매운탕을 펄펄 끌어 소주와 함께 맛깔나게 먹어치울 줄 아는, 제대로 놀 줄 아는 몇 안 되는 아저씨기도 했지.


그날도 어느 날처럼 집에 좀 붙어있으라는 부인 희자 씨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려던 김 씨는 그만 급하게 도망치느라 한꺼번에 들려고 애쓰던 짐이 와르르 쏟아지는 바람에 크게 휘청였고 한쪽 다리가 꺾인 채 앞으로 나동그라져 그답게 요란하게 다리를 부러뜨리고야 말았어.


깁스를 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누워있는데 몸이 근질근질한 거라 답답하기도 하고 좀이 쑤셔서 베란다 창가로 절뚝절뚝 나가서 창문을 열어보니 바람도 선선하니 이제 좀 살 거 같은 거라. 그동안 밖으로 싸돌아다니느라고 미처 보지 못했던 동네의 하루가 지나가는 모양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구름처럼 변화무쌍해서 잠시 넋을 놓고 그걸 구경하고 있던 김 씨 코로 지글지글 잘 익은 고기 냄새가 나지 뭐야.


코를 씰룩 씰룩 움직이면서 다년간의 미식으로 다져진 미각의 기억들을 떠올렸어. 이것은 양, 양고기다. 냄새가 어디에서부터 흘러들어온 건지 코를 공중에 치켜들고 킁킁대다 보니 아니 이건 위층이 아니라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오는 냄새잖아? 고개를 삐쭉 내밀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베란다에 그릴을 내놓고 그 위에서 꼬치로 줄줄이 올려져 있는 윤기 나는 양고기구이가 눈에 보이는 게 아냐.


자기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놓친 수많은 술자리들이 생각이 나더라고. 김 씨는 냉장고를 열어 비축해 둔 카스 두병을 손에 들고 특유의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했어. 아래층으로 내려간 거지. 띵동 벨을 누르니까 잠시 뒤에 주인이 나왔는데 아이코 이건 예상도 못하게 외국인이잖아.


그가 방글라데시에서 왔는지 말레이시아에서 왔는지 미얀마에서 왔는지 김 씨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어. 이걸 어쩌나 다소 당황해 서있던 김 씨가 양손에 카스를 들어 올리며 투게더 투게더를 더듬더듬 말하자 역시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듯한 상대방이 잠깐 망설이더라고. 아 이건 된다. 강점인 넉살를 부리며 투게더 투게더를 연신 외치자 집 주인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들어오라며 컴컴 손짓을 했어. 희자 씨가 알면 경을 치겠지만 속도 없는 이 양반은 히히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양고기가 익고 있는 베란다로 직진했지. 절뚝거리면서 말이야.


무하마드 아메드.

올해로 딱 40세가 된 아메드는 한국에 일하러 온 지 이제 막 3년이 돼 가던 참이었어. 고향에 둔 가족들을 위해 매달 돈을 부치는, 그래 매번 신문기사에서 자주 나오던 전형적인 이주노동자였지. 그날따라 고향 음식이 먹고 싶어서 얼마 전 이슬람 마트에서 사 온 양고기를 꼬치에 꿰서 굽고 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온 후 한 번도 없던 이웃의 방문에 깜짝 놀랐던 거지. 유쾌해 보이는 김 씨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온 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거든 대체로.


하도 떠들썩하게 다니기에 얼굴을 봐둔 위층 아저씨가 이렇게 느닷없이 자신의 집을 방문할 줄은 몰랐어.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조심성을 다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밥을 먹는 것도 외롭기도 했고 모처럼의 식구가 생겨서 내심 좋기도 했지 뭐야. 잘 익은 양꼬치를 돌리며 타지 않게 신경 쓰면서 난닝구를 입고 기브스를 한 채 작은 의자에 앉아서 이미 맥주병을 까서 잔을 가득 채우고 있는 김 씨에게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동안 김 씨가 꽉 찬 잔을 넘겨주는 게 아니야. 우물쭈물하는 아메드를 보며 어디서 들은 게 있는 김 씨는 아하 하면서 잠시 기다려보라는 제스처를 하고 절뚝절뚝 다시 위로 올라가서 매실청을 꺼내왔어. 물에 청을 넣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아메드에게 넘겨주고 욕심껏 가득 따른 맥주잔을 아메드의 매실주스 잔과 챙-하고 부딪히니까 아메드가 크게 웃었어. 드셔드셔. 서로에게 먼저 양꼬치를 넘기려는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지. 이슬람의 손님 접대 문화와 한국의 손님 대접 문화의 대 격돌 현장은 결국 집주인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받아 아메드가 승리했어. 잘 익어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양고기를 크게 베어 물고 김 씨는 꽤 오랫동안 꼼짝도 못 했던 나날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서 이상한 곡조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엉덩이 춤을 춰댔어. 아메드는 그런 김 씨의 너스레가 지금껏 봐온 그 어떤 한국 아저씨보다 대단해서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지.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지인이 됐어. 다리가 불편한 동안 집에 매여있어야 하는 김 씨는 아메드가 퇴근해 베란다에서 무엇인가를 굽거나 지지며 저녁을 만들기 시작하면 막대에 포크를 달아서 그의 음식을 훔쳐 먹었어. 아메드는 김 씨의 수작을 다 보면서도 굳이 제지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지. 왜냐하면 하나의 음식을 훔쳐가면 다음 막대기에는 김 씨가 준비한 계란 말이랄지 스팸 같은 반찬들이 내려왔거든. 그러니까 그건 도둑질이 아니라 일종의 교환과도 같은 거였어. 초반에는 아메드가 먹을 수 없는 돼지고기랄지 비늘이 있는 생선 같은 것들을 넘겨주는 바람에 아메드는 진땀을 뺐지. 무의식 중에 내용물이 뭔지 알지 못한 채로 먹어치우지 않도록 음식을 해부하며 어떤 반찬들은 먹지 않고 버렸다는 것을 김 씨가 알면 서운해할 텐데 싶어 신경이 쓰였지.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점점 아메드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내려오기 시작한 거야.


김 씨는 공부를 했어. 어느 순간 이 이야기를 직장 동료들에게 했더니 아이고 이 멍청한 놈아 그 친구는 못 먹는 게 태반이라고 나무라는 말을 들었거든. 네이버를 검색해서 찾아보니 정말 많은 것들을 못 먹더라고. 그럼 그동안 내려줬던 음식들은 다 어떻게 됐단 말인가. 아까워서라도 반찬을 고를 수밖에 없었지. 희자 씨도 일을 하니까 김 씨는 요리를 잘했어. 홍콩 영화에서 본 마초들처럼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거대한 프라이팬을 웍질 하면서 볶음밥 같은 것들을 후루룩 만들어내곤 했지. 이놈아 이번에는 남김없이 다 먹게 하겠도다.


훔치고 훔치는, 정확히 말하자면 주고받는 음식이 늘어남에 따라 서로의 일상에 대한 정보도 늘어났어. 아메드는 자동차 옆판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김 씨는 그 근처에 있는 작은 제지 공장에 다녔었지. 김 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고 아메드도 마찬가지였어. 어느 날 아메드는 자신의 가족사진을 잠시 막대에 붙여서 올려 보내줬는데 아이가 아직 3~4살 밖에 안되어 보이고 붉게 물든 홍시 같은 뺨이 아주 귀엽더라고. 김 씨도 질세라 딸아이가 어렸을 때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는 사진을 내려보내주니까 아래 층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 각자의 사진을 다시 돌려받고 잠시 그걸 가슴에 품고 앉아서 두 사람은 이제는 조금 먼 과거를 아련하게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어. 602호와 502호 위아래로 나란히 붙은 베란다에 앉아서. 두 사람 다 난닝구 차림이었지.


오래 앓던 김 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상을 치르는 와중에 자신의 나라 복장을 엄숙하게 갖춰 입은 아메드가 장례식장으로 찾아왔지 뭐야. 제대로 알리진 않았었는데 워낙 좁은 동네고 작은 아파트라 이웃들이 알려줬나 봐. 아메드의 방식대로 예를 표하는 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김 씨는 그 수다스러운 입을 그날만큼은 떼질 않았어. 나이가 많은, 그러니까 이제 부모를 떠나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어른의 얼굴이 웃지 않는 김 씨의 얼굴 위로 드러났지. 딱 그 나이만큼의 슬픔과 억울함과 서러움이 딱 그 나이만큼의 기쁨과 환희와 애정만큼 담긴 얼굴이었어. 더도 덜도 아니었지.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난닝구를 입고 낡은 아파트 공동 현관 앞에 옹색하게 놓인 벤치 위에 앉아있던 김 씨 곁에 앉은 아메드는 자신이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날의 기억을 김 씨에게 털어놓았어. 오랜만에 꺼내는 가족에 대한 내밀한 기억은 아메드를 울리고 말았고 그를 위로해줘야 할 김 씨는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정이 많던 김 씨는 줄곧 울음을 터뜨렸었는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었나 봐. 다정도 병이어서 김 씨는 엉엉 울었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메드의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제 같은 세상에 남아있는 친구 아메드의 마음처럼 자신의 마음도 가엽고 애틋해서. 두 아저씨가 엉엉 울고 있는 꼴을 본 이웃들은 그게 김 씨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다시 말하자면 김 씨는 매우 소란스럽고 유난스러운 한국 아저씨였거든.


두 아저씨들을 한심스럽게 그러나 분명 애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 아니 왜 울어 김 씨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던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 둘씩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서없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미처 다 못 담아 보낸 말들을 꺼내는 김 씨의 사모곡에 아파트 아주머니들도 옷소매를 훔치면서 훌쩍이거나 주책이라고 그만하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지. 그러다가 김 씨가 심지어 아메드의 가족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듣기 시작했지. 김 씨는 굉장한 이야기꾼이었거든. 김 씨의 유창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감정들을 한데 넣어 흘려보냈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가족의 이야기가 되고 가족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가 됐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밖에 없어. 초승달이 이른 저녁 떠오르면서 바람이 차지기 시작하자 희자 씨가 돌아왔고 주접을 부리며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김 씨를 발견하고는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집으로 몰고 올라갔지. 사람들은 아쉽게 흩어지며 아메드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어.


김 씨의 오지랖으로 아메드에게는 이웃들이 생겼어. 여전히 스팸이니 돼지고기 볶음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는 바람에 곤욕스럽긴 하지만 김 씨가 만들어 보내주는 볶음밥만큼은 끝내줬거든.


그러니까 이 동네에 가서 우연히라도 어느 아파트 502호에서 602호로 올라가는 막대기를 보게 되면 놀라지 않았으면 해. 그건 우정의 통로 같은 거니까.


모두 김 씨의 오지랖 덕분이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