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시절 모 중고거래 플랫폼의 면접을 봤다. 그곳은 과거에 인연이 닿아 내가 직접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이었다. 실무자 입장에서 내 프로젝트 결과물이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렴 신입 채용인 데다가 나와 구면이기까지 했으니 분명 다른 지원자 보다 유리한 지점이 있을 터였다. 면접은 순탄했다. 100점짜리 대답을 뱉진 않았지만 면접 내내 여유 있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면접장을 나올 때도 딱히 아쉬운 점은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나. 메일로 결과 통보가가 날아왔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거 실화야? 예상 밖이었지만 그다지 아쉽지도 후련하지도 않았다.
그 후로 벤처캐피털 인턴 면접을 봤다. 여긴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회사였다. 벤처캐피털 산업은 워낙 맨파워가 쌔기 때문에 채용의 문이 매우 좁다. 그만큼 붙으면 메리트가 있기에 꼭 붙고 싶었다. 면접이 시작되자 지원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1분짜리 자기소개 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 스펙의 지원자인지 알 수 있었다.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부터 해외파까지... 내 차례가 왔고 난 미리 준비한 지원동기를 읊었는데, 내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면접관이 되물었다. "그래서 진짜 지원한 동기가 뭐예요?" 응? 방금 말했잖아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애써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대답을 이어나갔으나, 그 후로도 서너 번쯤 더 "아니 그래서 진짜 지원한 이유가 뭐냐고 “ 내게 되물었다. 덕분에 초장부터 페이스를 완전히 잃었다.
"아, 이대로 가면 끝이다. 승부를 던질 때다." 면접 말미에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두 가지는 약속하겠습니다. 첫째, 같은 거 두 번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둘째, 아마추어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습니다." 면접관에게서 당황한 기색이 보였지만 이내 별다른 반응 없이 면접이 끝났다. 인연이 아니겠거니 하며 한강을 거닐다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합격 연락을 받았다.
최종 면접 역시 여의도에서 진행됐다. 면접장에 나와 함께 1차 면접을 본 지원자는 없었다. 대신 다른 타임 지원자 5명이 있었고, 대표님을 포함한 4명의 임원진이 면접관으로 참가했다. 최종 면접은 가벼운 질문 위주로 진행됐다. 분별력 없는 질문 위주였기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한번 승부를 던져야만 했다.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무리에서 벗어나 대표님이 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 가 대표님께 명함을 달라고 했다. 놀란 대표님은 이내 인자한 표정으로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대표님 명함에 적힌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열댓 줄 안 팍의 짧은 글이었다. "혹시 제가 떨어진다면, 월급은 안 주셔도 되니 한자리만 더 만들어 주십쇼. 대표님 밑에서 일 배우고 싶습니다." (진짜... 지금 생각해도 당돌했다.) 다음 날 바로 회신이 왔다. 이번 면접에선 떨어졌지만, 이력서를 들고 회사로 찾아오면 따로 봐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른 아침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는 지인이 경영 중인 벤처캐피털에서 일해볼 생각 있는지 물어보셨다. 때 마침 지인이 신입 한 명을 찾고 있었고, 대표님이 나를 추천해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렇게 난 그날 처음으로 오퍼라는 걸 받아 보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대표님이 주신 오퍼는 공손히 거절했다. 대표님 전화가 오기 전 간발의 차로 지금 회사의 오퍼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표님께서 들으시면 노여워하시려나?) 만약 대표님 전화가 며칠만 더 빨리 왔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난 대표님과 동종 업계 선후배가 되어 유망한 스타트업을 찾아다니고 있을까? 플랫폼이 아닌 투자 업계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떨까.
아니 그 이전에, 난 왜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중고거래 플랫폼 면접에서 떨어지고, 오히려 언더독이었던 벤처캐피털에서 오퍼를 받았을까. 이 두 시점의 난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