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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효닝 Jun 11. 2020

[3.7] 그래 인정하자_코로나, 양성

세 번째 컨트랙 일곱 번째 이야기

똑똑, "이제 너 차례야. 마스크 잘하고 나와."

 1월 중순, 아틀란티카로 승선했다. 규모 2800명대 크루즈선이었다. 일반적인 크루즈선의 손님과 직원들의 비율은 보통 3대 1 정도 된다. 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는 직원이 1000명 정도 됐었다. 하지만 1월 말부터 (이젠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발생했고, 당시 승선하기로 되어 있던 모든 크루의 일정이 취소가 되고 배도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그냥 멈춰버렸다. 당시 회사의 판단으로는 5월이나 6월 즈음 다시 운항한다는 계획이었고, 자신들의 계약이 거의 끝나가는 직원들은 다들 조금은 일찍 하선했다. 그래서 남았던 크루들이 600명 남짓 된다.  


 첫날, 1명의 양성이 발견되고 어제까지 추가로 33명의 양성자가 생겨났다. 이에, 승선하고 있는 모든 크루에게 전수조사를 시행한다. 두 번째 순서로 검사하는 직원들은 '일하는 크루'들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격리를 하는 것이 지침이기는 하지만, 음식을 배달해주고 여러 사무적인 일들을 해야만 하는 직원들을 50명 정도 뽑았었다. 


 "다시 한번 안타깝게도, 14명의 추가 확진자가 생겼습니다." 


 이젠 안타까운 일도 아니다. 비극적인 일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양성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14명의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 비율적으로 적어지긴 했지만, 어제까지, 아니 아침까지도 내 밥을 배달하던 직원들이었기에 다시 한번 한숨이 나왔다. 더더욱 첩첩산중인 것은, 격리 전후로 모든 크루의 식사를 담당했던 셰프들이 죄다 양성이라니 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나.


 600명 이상의 식사를 만들고 방에 음식을 직접 배달하는 일이 추가적인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어려워졌다. 배에서 또 다른 결정을 했다. 이젠 모든 끼니가 외부 업체에서 배달된다고 했다. 외부에서 들여오는 결정은 어쩔 수 없지만 더 걱정됐다. 일본 외부도 바이러스가 만만치 않다던데...


이제 외부에서 식사가 배달된다. 먼 길을 달려오느라 엄청 뜨거운 음식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충분하다 내겐...ㅎ


하지만,


 배달된 음식을 보고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이제 정말 밥다운 밥이다. 포크로 찍어 먹을 수 있는 밥이다. 외식만을 일삼던 지난날들이 후회가 되어가고 있는 나날들이었다. 해외에 가면 한식이 그리워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가 부른 건 어떤 음식을 먹어도 같은 느낌이라 딱히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 나이지만 그래도 항상 햇반을 챙겨가곤 한다. 

 왜냐하면 직원 식당에는 이 흔하디 흔한 찰기 있는 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쌀이 사실은 엄청 비싸다. 손님들을 위한 밥은 그래도 찰기가 있는 쌀을 제공하지만, 직원 식당에는 그저 펄펄 날아다니는 밥 밖에 없다. 그런 밥들은 먹으면 뭔가 배도 부르지 않고,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밥처럼 생긴 하얗고 긴 것을 먹는다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역시 일본 쌀... 이젠 포크로 밥도 찍어서 먹을 수 있다. 밥이 고소하다는 것이 이런 맛인지 다시 한번 느끼며 눈물의 도시락을 접했다. 직원들 중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제공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밥만 먹어도 배부른 도시락이다.(ㅋㅋㅋ)




아침 10시.


 누군가가 문들 두드렸다. (이제야) 방호복을 갖춰 입은 직원이다. 

 

"이제 너 차례야. 마스크 잘하고, 직원 ID 가지고 3층 갱웨이로 나와"



각자 방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다. 접촉을 줄이기 위해 모든 식사는 이 테이블을 통해서만 제공되고 수거된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일반 크루들이 차례로 검사를 받는다. 문을 나서는 그 순간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의무적인 격리이긴 했지만, 어떤 양성인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을지 모르는 이 복도, 이 공기를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매일 다니던 이 길이 이렇게 어색하고 무서워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을 복도를 따라 걸으며, 이미 양성인 방 앞에 걸려있는 '양성'표지를 보고 다시 한번 흠칫 놀라게 된다. 신종플루,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을 겪었어도, 정말 양성인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로 코로나, 지독하고도 어이없는 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미워졌다. 


 매일을 걷고 지나쳤던 3층에 도착했다. 


 부름을 받은 이미 많은 크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전체를 감싸고, 비닐장갑을 몇 겹이나 끼고 온 걱정 많은 직원들도 있었다. 난 그저 마스크만 쓰고 어떤 것도 만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검사는 배 외부에서 진행됐다. 각자의 아이디카드를 스캔하고 갱웨이 즉, 출구로 나선다. 


 파란 철다리를 건너 내려와 바로 오른쪽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3월 말부터 외출이 금지돼서 실제로 육지, 땅을 밟아보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배 안에서도 걸어 다닐 수는 있었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것 같은 카펫 위를 걸어 다닐 때와 이렇게 안정감 있고 딱딱한 땅 위에서 잠깐이나마 걷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 본인 확인을 하고 검사 키트를 받았다. 3명 정도의 의사(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일본 의료인?)가 있는 창고 같은 실내로 들어가서 검사를 했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바이러스를 코 안 깊숙이에서 채취하기에 검사가 더 아프다고 했다. 역시 알고 가는 게 나았다. 긴 플라스틱을 코 안으로 밀어 넣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넣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침투해왔다. 어디에서 감명을 받은 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육지에서 다시 멀어졌다. 결과는 하루 만에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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