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컨트랙 아홉 번째 이야기
"집 가게 얼른 나와:)"
이제 끝내보자 코로나.
양성이면 어쩌지. 내 몸 안에서 내 폐들이 썩어가고 있으면 어쩌지. 진짜 심한 바이러스가 들어온 거면 어쩌지. 하고 수많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았고, 후쿠오카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14일 격리가 끝나기 하루 전날 선물 아닌 선물을 보내주셨다.
사실 해외에 있기만 하면 차오르는 애국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승선해있는 600명의 직원 중에 나 혼자만이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인 크루징이 시작되는 4월, 5월보다 조금은 일찍 1월에 승선한 나는 그렇게 혼자서 다른 한국인 크루들이 승선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1명. 한국인.
크루즈선에는 매우 많은 인종들이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이지만 60여 개? 의 인종들이 승선해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처럼 1명, 2명씩 소수로 승선하는 인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남아 계열이나, 유럽인들이 많다. 이렇게 대다수의 인종들은 회사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에이전씨가 있는데, 승하선 관련 모든 일들은 대신해주는? 지도해주는? 그런 든든한 존재다. 난 에이전씨도 없고, 같은 인종도 없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혼자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양성자가 한 명 발견되고, 모든 크루가 1일 1실을 유지하며 격리를 했던 이튿날. 대한민국에서 나를 찾아주었다. 뭐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까?
>똑똑
HR 담당자와 IT 매니저다.
"왜?"
"지금 한국 대사관에서 너를 찾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그래서, 혹시 이메일이나 메신저 알려줄 수 있어?"
"아 일단 이메일은 적어줄게."
"오키"
> 다시 똑똑
이번엔 IT매니저만 혼자 서있다. 집 전화기 같은 수화기를 들고 말이다.
"왜?"
"이메일은 연락하기 힘들고 지금 한국 대사관에서 너랑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 왔어 받아봐."
"여보세요?"
항상 오랜만에 한국어를 할 때는 조금이라도 틀릴까 봐 평소에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각해서 또박또박 발음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주한 일본 영사관 영사입니다."
라며 나를 찾아준 대한민국에서 한참 동안 통화하며 나의 안부와 안전을 약속했다.
참. 감사했다. 물론 나를 찾아준 대한민국 영사관에 감사한 마음이 우선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사했다. 한참을 내 문 밖에 서서 전화가 끊어지기를 기다리던 IT매니저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드리고, 그다음 날부터는 아침마다 그 2주를 매일 안부 연락을 해주시고, 몸의 이상 여부를 점검하셨다. 언제나 나의 대답은 '좋아요', '괜찮습니다' 이지만 이런 대화와 접근이 처음이라 일 하시는데 폐 끼치는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모든 일이 지나가고 지났던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2주 동안 정말 방에서만 지내면서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지만 그 시간들이 그저 2주로만 표현된다. 매일 밤 잠들 때면 열이 나지 않는 채로 하루를 마감해서 기뻤고, 매일 아침 열이 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잠이 깬 나날들이 지나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자가 1명 나오고 난 후로부터 검사를 하고 격리기간 2주가 흘렀다.
어제저녁, 갑작스러운 캡틴의 방송으로 필리핀 친구들이 단 몇 시간 만에 짐 정리를 하고 새벽에 떠났다. 우리나라는 공항을 폐쇄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집으로 가는 비행 편이 없어서 시시각각 스케줄이 변하곤 했다. 그 2주를 허둥지둥 마무리하고 떠난 필리핀 친구들을 뒤로하고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면서 나는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2020년 9월에 다시 싸 지기로 했던 내 가방이 너무 이른 시기인 5월에 떠날 준비를 했다. 픽업 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나타나 내 방문을 두드린 직원은 나를 3층 갱웨이로 안내해주었다. 최대한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당부를 하면서. 3층 출구 앞에서 비행기 티켓과 안내 사항을 전달받았고, 우리가 있었던 나가사키에서 도쿄까지 먼저 가는데, 도쿄에서 1박을 하게 된다는 일정표를 받았다.
참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양성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양성자 비율이 있다는 도쿄에서 1박을 한단다. 그래도 한국, 집에 갈 수는 있다는 희망에 배 밖으로 내딪어 본다.
2주가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격리생활만 하고 있던 내겐 외부로 나온 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내가 마시는 공기마저 오염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머나먼 길이었지만 한국에도 안전하게 도착했고, 다시 한 검사도 음성이었다.
이젠 다시 시작되는 한국에서의 2주 격리이지만, 이 코로나가 얼른 잠들어 '일상'이라는 것이 다시는 누리지 못 할 일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