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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양자 Dec 17. 2024

시 꾸러미

미소 위에 걸어둔 겹겹이 주름살



검은 한로



 


 

삐걱삐걱 산짐승이 남긴 발자국에

멍빛 살얼음이 덮여졌다


누군가가 온 것도 누가 왔다 간지도 모르는

초점 잃은 노파가 눈동자로 사는 집

군데군데 허물어져 내렸다


헛헛한 웃음을 땔감으로 쌓아두었어도

아궁이 앞의 어머니는

겹겹 주름살 미소 위에 걸어둔다


꺼멓게 그을린 시렁에서

외줄을 타고 내려온 거미는

불이 남긴 입술 자국 위에서

유난히 삐걱거린다


불씨 꺼진 줄도 모르는 노파는

마른 뽕나무가짓단 끝에 앉아

시방 서리 내린 나방의 눈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궁이 속에서

일찍 시집보낸 딸의 눈이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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