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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양자 Dec 07. 2024

시 꾸러미

길 잃다, 종로에서


길 잃다, 종로에서





큰 나무의 먼 뿌리 한 지점에서

앞만 보고 걷던 나, 길을 잃었다

잃어버린 방향에 어리둥절

거미줄 같은 길감옥에 갇혔다

어둠 속 작은 모서리에 눌리고 눌려

화분 안의 꽃으로 피어나다가

갈증에 떠밀리던 기억도 희미해졌다

마비된 발바닥을 데리고 든 대동여지도

여기가 종로 뒷골목 어디인 것도 같은데

분간되지 않는 길은

올무에 걸려 죽은 짐승 같았다

살점 다 녹아내린 뒤에야

가시덤불 속에 남기는 인광빛

작은 길 여럿 거느린 사람은

자신이 걸어갈 길이 큰길이라 말하지만

몸의 뼈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갔다가 아니면 되돌아오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옛사람들 길의 설법 앞에서

지금, 현재 여기가 나

오래 아픈 통점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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