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경 묵상

언약식

출애굽기 24:3-8 묵상

by 김재광

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24: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하고

24: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 말씀은 저희 교회 수요기도회에서 나누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


오늘은 출애굽기에 나온 하나님과의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식 장면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지난 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떠올랐습니다. 대통령 업무를 바로 시작할수도 있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거창한 취임식을 하면서 어떤 형식과 절차를 거치고 그걸 통해서 국민들 앞에서 선언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이 형식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얻고 선서를 하면서 국민들 앞에 엄숙하게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가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을 다짐시킴과 동시에 그것이 엄숙한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약속이니만큼 서로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본문에 나온 언약식 장면을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그냥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주고 지키라고 할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서 이런 언약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언약식 장면을 상상해보면 제법 웅장했을것 같습니다. 시내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그 앞에 12개의 돌기둥을 세운 후에 각 돌기둥 앞에 각 지파별로 백성들이 줄을 섰을 것입니다. 그 제단 앞에서는 소를 잡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또 거기에 나온 피를 양동이에 담아다가 제단과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이 언약식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피를 뿌리는 계약은 당시 근동지역의 계약의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약속을 단단히 하는 것이지요. 고대 근동지역의 문화 중에 언약을 체결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쌍방간에 어떤 계약을 맺을 때면 짐승들을 반으로 가르고, 그 쪼개진 짐승들을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어 놓은 다음, 그 사이를 두 사람이 지나는 것입니다. 이 의식이 마쳐지면 그 계약은 성사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 독특한 언약체결 방식은 "만일 어느한편에서 계약을 파기할 경우 이 짐승들처럼 죽어도 좋다"는 뜻이 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숙하고 반드시 시행될 것이라는 확증의 계약이란 뜻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본문을 살펴보면 이 계약이 일방 계약이 아닌 쌍방계약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피를 양푼에 담아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린 것입니다. 제단에 뿌린건 결국 하나님께 뿌린 것이니 이건 하나님과 백성과의 쌍방 계약이었던 것입니다. 그 계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 노릇을 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상호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계약이 지켜졌나요?

참으로 놀라운 반전은 이 계약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이 약속을 망각하고 우상숭배로 온갖 죄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하나님 노릇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위반함으로써 죽어야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 노릇을 하시기 위해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지불해야 할 피의 댓가를 하나님이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이스라엘 백성의 피값을 지불하심으로써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과 맹세했던 피의 계약은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의 보호자 되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창 15장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기사에서도 이런 문화가 그대로 묘사되는데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하나님의 불이 지나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언약내용은 '내가 너를 복이 되게 할 것이고 너로 큰민족을 이루게 할것이며, 만민이 너를 통해 복을 얻게될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쪼개진 짐승 사이를 하나님만 지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엔 아브라함이 그 사이를 지났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너와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 만일 내가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는 나를 이 짐승들처럼 대해도 좋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류와 자기 백성들을 향한 언약은 이토록 확실하고 엄중한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에 우리의 영원한 안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분이지만 오직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는 구속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모순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약속을 믿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했던 약속을 형편이 바뀌면서 지키지 않을수 있지만 성경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던 지키지 않던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게 되고 그 거룩한 계획에 동참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오게 됩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크고 첫째 되는 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