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가족이랑 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 라는 국립 공원에 놀러갔습니다. 콜로라도에 있는 국립공원인데 커다란 모래산이 있어서 그 모래산에서 썰매타듯이 보드를 타고 내려오면서 즐겁게 놀았고 저녁에는 천막 숙소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어린 시절에 밤하늘에 보이던 은하수를 상기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와서는 제법 피곤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날만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일종의 힐링 여행을 다녀온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힐링"받는다라는 말을 쓰는데 약간의 탐탁치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힐링이라는 말은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힐링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순진한 나에게 상처를 준 것입니까? 아니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입니까?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상처를 받아서 이런 힐링을 원하는 것인가요?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저런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힐링"을 강조하는 심리에는 내가 피해자로 사는게 편하기 때문일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데 누군가가 악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자세는 사실 비겁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동적인 자세로는 자신의 삶에 대해 늘 핑계를 대고 남탓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기에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설령 나의 인생에 누군가가 심하게 개입을 했더라도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이상은 남탓을 하는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를 하지 않으면 그 원수를 항상 핑게삼아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을 감추고 그 안에서 피해자의 자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을 원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 좀 이상한 표현처럼 생각되겠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와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행을 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롭지 않으면서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힐링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