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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Mar 14. 2022

검지

  손톱을 지적하는 소리에 흠칫 놀라 손가락을 오므린다. 부엉이 발톱처럼 뭉툭하게 굽은 손톱. 예기치 않은 사고로 변형된 애증의 검지이다. 당혹스러워하는 내 모습에 손톱을 가리킨 손님도 머쓱하다. 손님이 돌아간 뒤, 심란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생채기가 돋아나는 듯 손끝이 아리다. 아린 느낌 따라 지난 일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람의 속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내 삶이 아니 나의 검지가 이렇게 변할 줄 어찌 알았으랴. 도통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아픔이 많은 사람은 조심스럽다고 반대하던 친정아버지도 종당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를 부리지 않는 성실함 덕분이었다. 사업이 순조롭게 성장하며 그가 만나는 사람의 폭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사업에 연관된 이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그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외출하는 그와 언쟁이 잦아졌다. 그의 허둥거리는 뒷모습에선 초조함까지 느껴졌다. 그를 지켜보며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핑곗거리를 찾아 밖으로 도는 그를 말릴 방도가 없으니 안개 속을 헤매는 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팽팽하던 줄을 놓아버리면 사정없이 퉁겨져 너부러지듯, 남편의 손을 놓아 보금자리가 흔적 없이 무너질까 초조하기만 하였다.

  남편이 변해가니 집안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홀연히 사라지는 그를 타박할 수도, 마냥 이해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의 낯선 모습과 마주했다. 사무실로 찾아온 이와 사라진 그를 새벽녘까지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매서운 눈빛의 사내는 지독한 말을 토해냈다.

  “전문도박단 사건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형사의 표정은 단호했다. 서슬 푸른 그의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추고 나 홀로 덩그러니 놓인 듯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얼핏 형사 어깨 너머로 초라하게 웅크린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선 공든 탑이 힘없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늘 밖으로 나도니 술 한잔하려니 했다. 아니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유흥도 즐겼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일탈이라 여겼다. 이 지경에 이르도록 놀음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식구를 끔찍이 아끼던 그가 아니었던가. 결국엔 그를 목표로 한 전문도박단의 계획된 사건으로 밝혀졌으나 사업체와 집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의 아픔을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어머니를 따라 새아버지와 생활하며 어떡하든 밉보이지 않고 싶었으리라. 용돈을 받으면 슬그머니 동생들에게 양보했고, 이른 새벽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운 뒤에야 학교로 향했단다. 새아버지에게 등록금을 받는 마음 또한 무거웠으리라. 어느 날인가는 바닥에 흩어진 돈을 주워 대학 등록금을 내었다며, 아마도 아버지는 실수로 돈뭉치를 땅에 떨어트렸을 것이라 애써 자신을 위로했단다. 집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이 사람의 곁을 지켜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에게 결혼은 해방구였으리라. 자신에 의지로 엮은 첫 보금자리,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공간이었지만, 남자들의 세계 또한 겪어보지 못했던 호기심의 세계였을 것이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평상시엔 그리도 성실한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자는 이들의 전화만 받으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무너져가는 토담집처럼 그는 서서히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듯 보였다. 

  그의 영혼은 이미 누군가에게 점령당한 것 같았다. 지독한 수렁을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치는 듯 보였지만, 도로 그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그에게 그 시간이 더 없을 자유로움이었다면, 나에게는 더 없을 고통의 순간이었다. 그의 일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불안은 현실이 되고 거친 폭풍우보다 잔혹한 토네이도가 우리를 삼켜버렸다. 

  홀로 세상과 타협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나이보다 의젓한 큰아이는 잘 이겨내는 듯 보였으나, 점점 말수가 없어지는 작은 아이를 대할 때면 가슴이 무너졌다. 종종 지친 마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늦은 퇴근 후, 잠깐 눈을 붙였다간 아침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지인의 공장으로 출근했다. 정오쯤 일을 마치면 다시 학원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학원이 쉬는 날이면 또 다른 일을 찾았다. 여유롭게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힘들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리 몇 년을 지내던 날, 사고가 나고 말았다.

  뭉툭해진 검지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차’하는 순간, 검지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저 뭉그러진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쇠 독이 오른다며 어서 흐르는 물에 씻으라는 소리만 겨우 들렸다. 검지의 붉은 피가 물줄기 따라 줄줄 흘렀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피가 마치 그간의 시름처럼 느껴졌다. 지치고 힘들었던 고단함이 물줄기 따라 흘러가는 듯이 후련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나간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흐른다. 가장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어 오히려 쉴 틈을 주지 않았고, 현실을 감추고자 죄인처럼 숨으려고만 했다. 겉모습에 연연한 부끄러운 내 모습이다. 비로소 검지의 상처가 현실을 인정하고 바로 볼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만 같다. 그리 보면 검지는 내 생애 뼈아픈 상처이자, 내 삶의 꿋꿋한 증거이다.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픔 하나씩은 가슴에 묻고 살아가리라. 나 또한 애증의 검지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낯선 이가 불현듯 검지를 가리키지 않았다면, 새삼 옛일을 돌이켜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다. 검지가 찾아준 평온한 일상을 다시 어두운 늪 속으로 빠트릴 수는 없다. 

  검지는 나에게 더없이 강인한 삶의 증거이다. 손안에 오므렸던 뭉툭한 손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래도 이만큼의 모양을 갖췄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잠시 우울했던 마음을 툭툭 털고 일어선다. 결코, 부끄럽고 주춤거릴 일이 아니다. 검지는 현재의 나의 삶을 일깨우고, 우리 세 모녀를 당당히 걷게 해준 장본인이다. 창밖을 보니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도 나를 응원하는 듯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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