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떠난 집은 사람의 온기도 사라진다. 그 집에 더는 머물 자손이 없다. 작은 산촌의 역사를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이 가무내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으랴. 마을에는 일손을 보탤 남자도 없다. 큰아버지가 마을의 유일한 남자였지만, 이제 당신도 더는 머물 수 없단다. 병이 깊어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사촌의 말이 아득하게 들린다.
내가 자라온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가무내는 코흘리개 아이의 성장과 태양 아래 까맣게 그을린 부모님의 삶도 잊히리라. 동그란 문고리에 지문처럼 남아있던 허리 굽은 할머니의 흔적도 사라진다. 대문을 밀고 불어오던 소슬바람도 흙벽을 스쳐 뒷담을 넘어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아무도 없는 집은 주인의 굽은 허리처럼 힘없이 무너지리라.
내 마음은 오늘도 가무내로 향한다. 미원 삼거리에서 성당을 끼고 돌면 좁은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직진으로 이십여 분을 더 달린다. 사방이 얕은 동산에 둘러싸인 마을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조용한 산촌이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에는 도시에서 더위와 소음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든다.
가무내를 현천이라고도 부른다. 둥글고 납작한 검은색 돌이 많아 그리 불렀다고 한다. 아니 누군가는 개울이 깊어 물이 흡사 검은빛인 듯 보여 그리 불렀다고도 말한다. 강변은 더는 넓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밤낮으로 뛰어놀던 놀이터이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가무내에 빈집이 늘어난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일곱 집도 자식은 도시로 떠나고 나이 든 부모만 남았다. 그들이 돌아가시면, 살던 집은 홀로 남으리라. 내가 태어난 집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십여 년은 빈집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도시에서 홀로 사시던 어느 할머니가 살고 있다. 어머니가 우물가에 심어 놓은 불도화도 목단도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가무내는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리라.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도시로 떠난 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리라. 인디언은 “노인이 죽으면 마을의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무내를 지키고 계신 그분들마저 떠나면, 마을의 오랜 시절을 말해줄 분이 없다. 산촌 가무내의 역사가 좀 더 오래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가무내가 나를 기억하듯 나 또한 그곳을 잊지 못한다. 산촌의 시간은 나의 삶이며 나의 삶은 곧 산촌이다. 내가 자란 가무내의 시간은 글이 되어, 나는 가무내에 ‘글집’을 짓는다. 나만의 ‘글집’에는 가무내의 사라지지 않는 생생하고 순박한 이웃의 삶과 시간이 이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