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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Apr 27. 2021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를 외치다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다

  이곳,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다짐한 것이 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이 웃겠어.”     


 이런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에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나를 질식시키던 ‘재미없다’라는 감정과 아침저녁으로 ‘일 하기 싫다!’ 하고 악 쓰던 아우성, 웃는 법을 잊어버린 듯 세상사에 무감각해져 버린 표정 등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자괴감을 들 수 있겠다.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가운데서 대개 ‘해야만 하는 일’을 택해 온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 정도쯤이야 사뿐히 무시하거나 설득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했다. 노상 뒷전이 되어온 내 마음은 그렇게 안녕히 뒤편에 계신 줄 알았더니, 소리 없이 번지고 커져서 어느 순간 ‘무료함’, ‘지침’, ‘살기 싫음’ 같은 감정으로 되돌아와 나를 쥐고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정혜야. 말레이시아에서는 꼭 더 많이 웃기를 바라!”     


  출국 전에 만난 친구의 응원은 그래서인지 더욱 경쾌하게 들렸다. “꼭 그럴게.”라던 내 대답은 친구에게 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문신처럼 새기는 말 같았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온 지도 어느덧 2달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 정말 더 많이 웃고 있니?’      


  물음을 던진 김에 거울을 봤다. 사실을 말하자면,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처럼 ‘와하하하’ 라거나 ‘깔깔깔깔’하고 배를 잡고 웃고 있진 않다. 무언가에 골몰하는 표정, ‘바쁘다, 바빠!’ 징징거리는 속 사람의 얼굴,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장소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진 않는가 보다. 여전히 수업 준비를 위해 퇴근 후에도 노트북을 붙들고 앉아 있는 나란 인간. 시간이 나면 미리 일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발등에 불 떨어지면 밤을 새우면서 작업을 하는 나란 인간. 이 인간을 고대로 Ctrl C , Ctrl V 해왔구나, 싶다.     

 

 도대체 너란 인간은 어쩌자고. 야, 이 구제불능아!     


  스스로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별안간 들다가도, 문득 이게 바로 나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재미있어하고, 생활에서 잘 활용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게 나에게는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 맞다. 그러니 누가 안 시켜도 시간을 내서 뭔갈 생각하고 만들고 또닥거리고 있겠지.


  하하 호호 여행을 다니고 꽃, 풀, 나무, 하늘 등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람도 물론 좋아 보이고 부러워 보인다. 언젠가는 그런 사람들만이 자기 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헤벌쭉 웃고 있어야 완벽하게 행복하고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장소를 옮겨 와서도 가르치는 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 역시도 나답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들고, 미소는 지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한국에서 우울하고 괴로웠던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예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에 집중하는 걸 방해하는 요인들(잡무 등)이 많아서 괴로웠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므로 결론! 더 많이 웃어보려고 장소를 바꿔봤는데, 결국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더라.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여전한 특성 그 자체가 바로 나였더라.     


  이상 타지 생활 두 달짜리의 짧은 단상이었음.           


덧) 그래도 차츰 여유 시간이 더 생기면, 내가 하고 싶은 또 다른 것들을 하나둘씩 시도해 보자고 새로운 다짐을 해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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