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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Mar 10. 2021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를 외치다

(1) 흔들리며 피는 꽃을 떠올리며

자가격리 하는 호텔 방 안에서

 지금 나는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의 M 호텔에서 또닥또닥 타자를 치고 있다,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이 분명하다고 느끼면서.


 3월 5일, 이곳에 오기까지 두 달여간 경기도 분당과 대구를 오가며 정신 없이 준비했던 시간들도 희미해져간다. 파견 통보를 받고 느꼈던 얼떨떨함과 기쁨, 아쉬운 사람들과의 작별과 슬픔, 두서없이 벌여 놓은 짐을 보며 ‘과연 떠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던 감정들도 저편 어딘가로 바람따라 흘러가 버린 듯하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말처럼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순간순간에 적응하고 일희일비하며 살아갈 모양이다. 


 한국어 교원으로 파견되어 일하는 것은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던 꿈이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실현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 시국에 기존 파견자들 중 절반이 연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틈바구니 속에 밀어넣은 지원서였고 촉박함 속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며 덜컥 되어버렸다.  


  말레이시아로 간다고 하니 사람들은 대체로 ‘코로나 시국에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반응 혹은 ‘말레이시아에 한 번 가면 돌아오기 싫어질지도 모를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 여행을 가본 적 없고 평소 마음에 품고 있던 나라도 아니어서 두 반응 모두에 ‘그럴지도 모르지. 또 안 그럴지도 모르고.’라는 어중간한 답을 했다. 지금 이렇게 자가격리를 위해 발코니 밖의 말레이시아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는 시점에서도 똑같은 마음이 든다. 이럴지도, 저럴지도. 내 몸으로 직접 부딪히지 않고서야 모를 일이라는.

창 밖으로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다 그쳤다. ㅠㅠ

 누군가는 나에게 말레이시아에서 겪은 천국을 이야기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말레이시아의 말 자(字)도 꺼내지 말라’라며 지옥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겠다. 


  다만 KL 공항에 도착해 순조롭게 입국 심사가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예기치 못하게 12시간 가까이 안개 속을 걷는 지루함으로 버티다가, 랜덤 호텔 중 프리미엄급인 M 호텔에 배정 받아 환호하던 반나절의 우여곡절과 전화위복을 떠올려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공항에서의 긴 입국 심사
긴 기다림과 고생 끝에 호텔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이해되지 않는 난관도 있었지만 함께 온 동료들과 고락을 나누며 버티고, 희망 갖기와 마음 비우기의 과정을 거쳐 다같이 ‘운이 좋았다!’며 쾌재 부르던 입국 첫째 날의 과정이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의 압축판이 아닐까 싶다. 예측할 수 없음, 무궁무진한 변화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속성이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야겠다. 다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떠올려본다.  

흔들리며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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