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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Jan 19. 2021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

나만 소중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최근 본 유튜브 영상에서 이용녀라는 배우를 보았다. 연극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고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아주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게다가 평소  보톡스를 지나치게 맞은 중년의 얼굴에 반감을 느끼는 편인데 이 배우의 얼굴도 조금은 인위적인 편이라, 겉모습으로 편견을 가질 뻔도 했다.

그러나 영상을 통해 매일 같이 수십 여마리의 유기견에게 먹이를 주고 견사도 청소해 주는 등 그녀가 개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보았다.(이미 수 년 전부터 화제가 된 일들이다.)


 방송의 편집을 믿지 않는 나지만, 강아지들의 표정이 밝고 편안해서 그녀가 개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사랑해왔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벌어 놓은 돈을 개들 돌보느라 다 쓰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3만원씩 빌어 사료를 산 적도 있었다는 그녀의 인터뷰를 보는데 문득 머리와 마음이 동시에 쓰려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기 자신의 삶까지 위협 받으면서 저러는 건 어딘가 지나친 면이 있지 않나?'

라며 바로 머리속에서 돌아가는 자동적인 판단이, 어딘가 때묻어가는 어른의 증거 같다, 싶었다. 어렸을 때라면 아름답다, 위인이다 느꼈을 일들에 대해 '바보 아냐?', '자기 좋으라고 한 건데, 뭐. 존경은.' 하면서 냉소적이어져 가는 내가 문득 놀라웠다.

남보다는 내가 우선이다, 나를 잘 챙기자, 라는 기조가 요즘 시대의 흐름이라며 서른 넘어서는 귀찮고 괴로운 일에 모르쇠 온 일이 수많다.

하지만 문득 '나를 잘 챙기자'는 그 마음이 정말 나를 잘 챙기고 편하게 하도록 이끌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오히려 점점 더 마음 그릇이 작아지고 이기적이게 되어서, '할까 말까' 할 때 '에이, 하지 말자'라는 선택도 많이 했다. 심지어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까지도.

나를 잘 챙긴다는 거, 정말 나를 잘 챙기게 하고 있는 거 맞나?

예전이 읽은 동화가 있다. 사람 마음에는 누구나 날 때부터 존재하는 양심이 있단다. 그 모양은 세모. 그래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마음이 콕콕 쑤신다고 했다. 하지만 점차 양심을 무시하면 모서리가 닳고 닳아 둥그레지고 끝내는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이 없어진댔다.

나의 경우는 계속해서 나만을 생각하다가 양심이란 걸 어느 정도 잃어버린 것 같다. 닳고 닳은 지우개처럼 꽁무늬가 뭉게진 것처럼. 어쩐지 세상만사 귀찮어할 뿐더러 용기 없는 사람이 된 것도 같다.

요즘에는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행하기에는 의외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용써야겠다.


*) 방송 보면 일반이나 연예인이나 50 . 60까지 몸이랑 얼굴 가꾸며 자기 관리 잘 한 거 뽐내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데 일단 내가 아는 사실들만을 근거로 판단하기엔 이용녀라는 분의 다듬어지지 못한 모습이 되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예쁨'은 있는데 '아름다움'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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