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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May 09. 2021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를 외치다

내 한 몸 누일 곳은 어디에(2021.03.11.-03.20.)

  출산한 지인분들 가운데 “애기가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때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왕왕 계셨다. 아기의 재롱도 보고, 커가는 과정도 보는 것이 육아의 백미(?)라고 생각하곤 하는 일반적 상식을 뒤집는 그 말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깔깔 웃었던 기억도 있다. 


 이 글의 카테고리는 말레이시아, 한국어 교육과 같을 터일 텐데 갑자기 웬 출산, 육아 관련 이야기냐 물을 성 싶다. 실은 입말(‘말레이시아 입국’의 줄임말) 후 7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뒤의 심정이 꼭 그와 비슷해서이다. 우스갯소리지만 “호텔에 가만히 들어앉아 자가격리 할 때가 가장 편할 때다”라고나 할까.

자가격리하던 방에서 ... 햇살이나 쬐던 나날들을 떠올려 봅니다... 


 3월 11일 푸트라자야 메리어트 호텔에서 6박 7일의 자가격리를 끝낸 11명의 한국어 교원들은 그와 동시에 각기 자신들이 머물 임시 숙소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근무지의 교장단, 협력 교원의 픽업을 받아 떠나신 분도 계시고, 나처럼 픽업 없이 홀로 그랩(말레이시아 텍시)을 타고 임시 숙소로 간 사람도 있다.) 


  자가격리 할 때야, 편안하게 호텔방에 들어 앉아 따박따박 주는 밥 받아 먹고, TV로 넷플릭스 조금 보다가 잠들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서.바.이.벌.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도 집 보고 계약하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데, 가족도 친구도 없는 철천지 낯선 타국에서 말레이시아 부동산 중개인들을 만나 이 집 저 집 둘러보고, 살기 적당한 집을 간택하여 사기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10개월 계약서에 도장을 꽝꽝 찍는 ‘대소사’ 중 ‘대’사를 혼자 해내야 한다니! 


  하지만 사람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는 되어 있는 모양으로,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리는 한 순간의 무모한 투지만 발휘해내면 그 이후는 또 어떻게든 굴러가는 듯하다.


  그 무모한 투지에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교이고 범죄율이 낮대!”, “아이프로포티(말레이시아의 집 구하는 사이트. 우리나라로 치면 ‘직방’ 같은 것)의 방이나 중개업자들도 믿을 만 하대!”라는 경험자들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믿어보는 순수한 일념(?)도 포함된다. 속을 때 속더라도 일단은 믿어 봐야 일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믿고 불러본 부동산 중개업자는 ‘The platinum’이라는 호텔의 방들을 보여주는 미스터 왕.  

  (The platinum은 자가격리 끝내자마자 캐리어 끌고 바로 이동해 온 나의 첫 임시 숙소로서, 20평은 되어 보일 정도로 방과 거실이 큼직하고 욕실도 컸으며, TV, 냉장도, 에어컨 부족함 없이 다 있었다. 게다가 꼭대기 층에는 말레이시아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페트로나스 타워)이 보이는 수영장이 있어 만족스러웠던 호텔이었다.) 

 

사진만큼 흐릿해져 버린 미스터 왕과 platinum

 미스터 왕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계 말레이시안 같았는데 첫 만남부터 약간 불친절하고 거들먹거리는 느낌에, 가격 흥정은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하여 그리 좋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게다가 방의 가격이 한 달에 RM 2200-2500, 즉 한화 66-75만원 정도로 형성되어 다소 비쌌다. 방의 상태 역시, 호텔에서 제공하는 방이 쾌적하게 잘 꾸며져 있던 것과 달리 왕씨가 보여준 월세 받고 임대하는 방들은 집 주인이 대만이나 홍콩 등 타국에 있는 탓인지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바닥이 푹 파여 있다거나, 사용안 한 배수관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거나.)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할게요.”


  그래서 일단 보류. 내 길지 않은 영어 수준과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과연 방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한 번 시도가 어렵지, 어쨌든 방은 구해야 하고, 본 방은 마음에 안 들고, 그러다 보니 알아서 보류도 하고 방 구하는 어플에서 다른 방을 찾아보는 등 다음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만난 중개인은 이제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말레이시아 남자였는데 매우 친절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보여 준 방은 Mercu summer suites 의 방들. 원룸 형태로 된 곳도 보고, 방이 2개인 곳도 봤는데 가격도 RM 1500, 한화 45만원 정도로 KL 시내 치고는 무난한 편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사람이 많이 빠져 할인도 해 준다고 먼저 말해 주었다. 또 이 나라 월세방은 두 달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받는데 그것도 안 낼 수 있게 계약서를 만들어준다는 등 내가 제시한 조건을 거의 맞추어주었다. 하지만 방이 매우 더웠고 경관이 건물로 막혀 있었으며, 말레이시아에서 바퀴벌레와 개미를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어쩐지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습기가 있어 또 다시 보류.

건물 벽에 막힌 건 별로였던 mercu summer suites


 “Let me think about it.(생각해 볼게요.)”


  중개인 두 명을 그렇게 혼자 만나, 묻고 메모하고, 보류하면서 덜컥 계약하지도 않고, 신중하게 방을 보는 나 자신이 은근히 기특했던 그 무렵... 에는 몰랐다. 그 이후로 중개인은 줄잡아 6명, 방은 20군데는 더 보게 될 줄은... 


 당시 주고 받은 카톡의 말에서처럼, 강제 고생 다이어트에 방을 보면 볼수록 장단점 파악만 빨라질 줄도 몰랐다ㅠ.ㅠ

방 보러 다니며 머리 터지게 표로 정리하고 비교했던 흔적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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