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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Apr 17. 2022

'친구'에 관한 사색-고마운 꽃에게


  오늘 만난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예쁘게 화장을 하고 벚꽃같이 화사한 모양을 하고 왔다.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나는 내가 도로 위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시든 꽃 이파리 같이 느껴졌는데 그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나는 더더구나 망측했다. 해괴하게 웃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며 얼이 빠져 있었다. 앵글 속의 사람을 예쁘게 바라보면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는데, 그녀는 나의 그런 순간들밖에 포착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 걸까? 내 마음은 엉뚱한 곳으로 날이 섰다. 


  나를 만난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라며 ‘예쁘다’, ‘예쁘다’ 많은 칭찬을 해준 날들. 물어오는 정보들에 대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제공했던 기억들... 주로 밥도 내가 사고 선물도 많이 준 것 같은데 그녀는? 무얼? ... 오늘 나는 고작 그녀의 행복함과 아름다움을 비춰내주는 전신거울 정도의 존재로만 느껴졌다.


  받아내지 못한 것들만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 기분이 참 별로였다. 쌓아온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질뿐더러 고작 이런 서운한 부분밖에 떠올려내지 못하는 내가 특히 옹졸해보였다.


  12년 전쯤 어느 겨울, 그녀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매서운 바람을 뚫고 캠퍼스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나 하나밖에 생각 못했던 스물 한 살의 나는 ‘오늘 못 나가겠어, 미안.’이라며 바람을 맞혔다. 그때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며 날은 얼마나 더 추웠을까? 또 다른 늦은 밤, 열쇠를 잃어버린 것 같다며 급하게 온 연락을 다음 날에야 확인해서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 준 날도 있었는데? 


  그런 미안한 기억들도 있지만... 내가 우울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2시간 동안 말 없이 이야기를 들어준 고마운 기억 하나, 원피스를 입고 온 나에게 어울릴 것 같다며 드라이 플라워를 사준 고마운 기억 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준 고마운 기억 셋. 그런 두고두고 가슴 먹먹해지는 나날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그녀가 왜 나처럼 행동하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활짝 피어나는 친구를 나 보란 듯 홀로 피어나는 장미로 오해하며 조바심을 냈다.


  사람은 누구나 꽃. 꽃이 꽃에게 부러워할 일이 뭐가 있고, 자랑할 일은 뭐가 있나? 너도 예쁘고, 나도 예쁘고. 너도 한 번 폈다 지고, 나도 한 번 폈다 지는데. 못 받은 기억보다 받은 기억 더 많이 생각하고, 다른 이가 마음껏 꽃 피우도록 박수치며 응원해야지. 그러니까 눈물일랑 닦고,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을 자양분 삼아, 더 많이 아름답다 칭찬하고 더 많이 어여쁘다 감탄하면서 나만의 향기와 꽃잎과 꽃말을 갖춰 가야지. 


 오늘 하루 이런 글을 쓰게 해준 그녀에게 문득 고마워진다. 고마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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