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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Jan 11. 2024

마음이 아파 덮어버렸던 책을 다시 펼친 이야기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도저히 마음이 아파 덮어버렸던 <모순>의 책장을 다시 펼친 것은 올 겨울이 시작될 쯤이었다.   


    그 사이 나는 긴 연애를 내 손으로 어그러뜨린 바 있었고, 

그 일을 기점으로 밤마다 불을 켠 채 잠을 청하기 시작했으며, 

고독 앞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싱글의 마음을 톡톡히 느껴보고 있었다.   



    "그래, 결혼을 할 거야?"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오는 말들에

 "인간은 혼자 못 살아. 괴로워도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단 걸 깨달았어."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 나는, 

그렇게  '외롭게 살 것이냐, 괴롭게 살 것이냐'의 인생의 물음 앞에서 '차라리 괴롭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 동안

    나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이해되지 않는 부모의 삶에 대한 찐득한 슬픔과 분개가 내 글쓰기의 원료였다면, 

나는 그 원료가 공중분해 되어버린 비행기처럼 살고 있었다.   




    "그녀처럼 살아서는 안 돼.

    그런 삶은 어리숙한 사람이나 하는 선택이야."   


    라는 말이 힘을 잃은 것은 물론이다.   



    내가 아는 그녀는 자기 자신의 삶보다 한 남자를 더 사랑했고, 그에게 순종하였던 것이다. 

자기를 금이야 옥이야 아껴주는 다정다감한 남자가 아니라,

아기를 낳고 밥을 해주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내를 위해, 

얼굴 가득 주름을 단 채 삼시 세끼의 밥을 하며 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ㅡ 


나는 그게 못내 못마땅해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제는 그런 삶이나 저런 삶이나 딱히 더 행복하거나 더 가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오직  자기 하나만을 위해 성취지향적인 삶을 사는 건 허무하고 쓸쓸하며, 

자식을 잘 양육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삶이 

더 나은 삶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란 인간도 결국에 별 특별한 수는 없구나'라는 체념으로 고개를 숙일 때쯤 

여동생이 말했던 것이다.   


    "소설 <모순>에서 이모가 지루하게 느끼던 남편 같은 남자를, 

끝내 여주인공이 선택하더라? 근데 그걸 이해 못하는 독자들도 많대."   


    기실, 그걸 이해 못하는 독자들 중의 하나는 바로 나였다. 

인생을 1 넣으면 1 나오고, 2 넣으면 2 나오는 논리적 세계로 생각했던 과거의 나 말이다.  


    ...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이란 게 그렇게 

위로 옷감 자르듯이 단정하고 정확하게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원망하거나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의 길을 똑같이 밟을 수도 있단 걸. 


그리고 그저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삶이 사실은 귀하디 귀한 보물 같은 삶일 수도 있단 걸.



    "네가 살아보고 말하렴."이라던 엄마의 말씀과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모순>의 표지에 있는 이 구절이 마음으로 절절이 이해되기 시작한 겨울날,  



    앙상한 나무가지를 보면서  

    '저 앙상함도 나름대로 운치 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기뻐질 때쯤  



    <모순> 역시 마음 아프지 않고, 기쁘게 읽히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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