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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Feb 15. 2024

이야기 수업의 종말과 시작

소설 습작 1

*채연이와 승훈이,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아이들에게          



                                                  이야기 수업의 종말과 시작                                               



   내가 그 수첩을 다시 만난 건 큰 창 가득 햇살이 쏟아지던 오후였어. 이사만 해놓고 풀지 못한 짐들에 마음이 쓰였는데, 별안간 ‘이런 따사로운 한낮이야말로 짐 정리하기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지. 


  “이런 사진도 있었구나.”


  급하게 포장해 둔 물건들이다 보니 있는 줄도 몰랐던 물건들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추억에 잠기게 했어. 이미 20년도 더 되어 빛이 바랜 초등학교 졸업사진, 언젠가 친구가 여행 중 샀다며 선물로 주었던 스모키 쿼츠 귀걸이, 초록색 면에 갈색 선으로 지도를 그린 손수건. 이런 물건들 덕분에 짐 정리의 진척이 나가지 않고 있을 즈음, 박스 한 구석에서 바로 그 수첩을 발견한 거야. 


  “눈이 성큼하던 아이가 직접 만들어서 준 수첩이었지.”


  노란색 꽃무늬 천으로 만들어진 표지의 먼지를 정성스레 털어내고, 책갈피 역할을 하는 끈을 조심스레 당겨 여니 7년 전 내가 알록달록한 펜으로 정성껏 적어둔 이야기들이 모여 있더라. 가령 ‘시골 변소 이야기’, ‘택시 운전수 이야기‘, ’삵을 고양이로 착각한 이야기‘ 같은 것들. 기억나는지? 


   “선생님! 오늘은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으세요?”


  그렇게, 너희가 졸라댈 때마다 하나씩 풀어놓던 나만의 이야기 보따리가 바로 이 수첩이었는데. 이것도 어느새 먼지가 쌓이고 표지도 희끗한 것이 과거의 물건이 되어 버린 것 같네. 

    

  ***     


  “이 선생. 이야. 블링블링하구만?”


  손깍지를 끼고 의자가 젖혀지도록 깊숙이 누워 있던 한 부장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선생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 교무실 내의 시선이 일제히 이 선생에게로 향했다. 한 부장의 말처럼, 이 선생의 귀에 늘어뜨려진 귀걸이와 하트링 목걸이가 투피스 정장 차림의 이 선생을 더욱 우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역시 안목 있으셔. 어저께 백화점 갔다가 마음에 들어 데려왔죠.”


  누가 봐도 C사의 가방임을 알 수 있는 명품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이 선생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잘 어울린다, 자기. 나도 성과금 받으면 그런 귀걸이 하나 장만해야겠다.”


  “쌤. 머리도 새로 했죠? 웨이브 예쁘게 잘 됐는데?”


  사람들이 한 마디씩 칭찬을 거들 때도, 유 선생은 이 선생님을 힐끗 쳐다만 본 뒤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10분 안에 찾아내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야기와 이야기들을……. 이야기가 없으면, 수업 내용만 빡빡하게 전달해야 할 텐데, 그러면 백방 아이들은 지루해 한다. ’그만 말하고 빨리 마쳐 주세요‘ 하는 눈빛을 유 선생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나둘씩 시계를 보기 시작하고, 하품을 하고, 도미노가 스러지듯 차례차례 책상에 엎드리고, 반에서 제일 공부 잘 하는 학생마저 눈을 꿈뻑거릴 때 느낌은 숨이 막히도록 끔찍했다.


  ’그러니 찾아야 해.‘


  딸깍딸깍. 타닥타닥. 유 선생의 마우스 소리와 타이핑 소리는 예사 것이 아니었다. 절박하고 필사적인 안간힘 그 자체였다.  


  ’찾.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돌 때 그녀는 깨달았다. 이미 조례 시간이 5분 경과했다는 사실을.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교실에 들어가고 없어 교무실이 휑했다. 화끈거리는 기분에 부랴부랴 교재를 챙겨 문을 나서는 유 선생님의 눈에, 잠깐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묻은 한 부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못 보셔서 다행이야.‘      


  유 선생의 바쁜 발걸음이 복도를 울렸다.     


***  


  선.생.님.무.서.운.이.야.기.해.주.세.요.     


  초록 칠판 가득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아이들의 분필 글씨. 유 선생은 ‘요 귀여운 것들’ 하는 표정으로 칠판과 아이들을 번갈아본 뒤, ‘그래, 좋다! 대신 수업 잘 들어야 해!’라고 반협박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건 K모 지역의 어느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야.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근무하시던 선생님들도 퇴근한 밤 12시. 선생님 혼자서 플래시를 켜고 저벅…저벅… 복도를 순찰하고 있었단다.”


  “와. 진짜 무서울 것 같은데? 갑자기 귀신 나오는 거 아냐?”


  “야, 야, 조용해! 그냥 듣자! 선생님,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그런데 그 학교에는 말야. 밤에는 절대 들어가선 안 된다는 4층 옥상이 있었어. 하지만 3층 복도를 순찰하는 이 선생님 귀에 자꾸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야. 소리의 근원지는 물론, 4층 옥상이었지.”


  아이들이 꼴깍 침을 삼킨다. 25명 중 23명이 초집중 상태였다. 예외적인 2명은 진희와 동건이로, 진희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잠을 못 잔다며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동건이는 평소에도 자주 엎어져 있는 학생으로 딱히 유 선생의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었다.


  “탁, 드르륵- 탁, 드르륵- 자꾸만 이런 소리가 옥상에서 들려오는데, 무시를 해야 하나, 확인을 해야 하나 얼마나 갈등이 되겠어. 하지만 혹시나 사고나 범죄 때문에 나는 소리일까 걱정이 된 선생님은 눈 딱 감고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아이들이 숨죽인 채 또 다시 침을 삼켜댔다.  


  “그랬는데 이상하다, 옥상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겠어? 선생님은 의아스럽게 플래시를 이곳저곳 비추다가 잘못 들었나보다, 하고 옥상에서 나오려는데, 그때! 탁, 드르륵- 탁, 드르륵-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돌아보니!” 


  유 선생은 정색을 하고, 허공을 벽 삼아 기괴하게 부딪치고 허물어지는 몸동작을 했다. 


 “몸이 반 토막 난 귀신이 탁, 드르륵- 탁, 드르륵- 이렇게 부딪치고 허물어지고 부딪치고 허물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대!”


 실감 나는 유 선생의 행동에 여기저기서 꺅 놀란 소리가 났다. 자신의 몸을 감싸 안는 학생, 친구와 서로 돌아보며 ’아, 어따ᅠ각해. 진짜 무서워. 오늘 잠 못 자겠다.‘ 라고 울상을 짓는 학생들도 있었다. 


  “자, 실망 안 시켰지? 그럼 잠도 깼으니 이제 열심히 수업 진도 나가는 거야.”


  “아- 아쉽다. 그래도 내일 또 이야기 해 주셔야 돼요! 알겠죠?”


  “그건 오늘 너희가 공부하는 태도 보고.”


  “얘들아, 다 빨리 책 펴! 집중해, 집중.”


  유 선생은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오는 학생들의 반응에 작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귀를 막고 있던 진희도 그제서야 귀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뺐다. 교실 뒤편에 엎드려 자고 있던 동건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꿈나라행이었다.     


 ***     

  유 선생의 이야기 수업은 봄부터 여름까지 호황이었다. 그러나 유 선생의 이야기 수업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10월 즈음이었다.


  “내 수첩이 어디 갔지?”


  금인듯 은인듯 유 선생이 항상 소중히 챙겨 다니던 수첩이 보이질 않았다. 유 선생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입술이 파리해지고 손이 덜덜 떨려 왔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시계를 보기 시작하고, 하품을 하고, 도미노가 스러지듯 차례차례 책상에 엎드리고…. 유 선생의 머리속에 예상 반응이 영사기처럼 차례차례 흘러갔다.


  “유 선생, 안색이 왜 그래?”


  유 선생이 허둥대며 땀을 삐질거리며 있는 것을 한 부장이 용케 알고 물어왔다. 


  “아, 수업 때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이 없어졌어요.”


  “중요한 거야?” 


  “네, 그거 없으면 수업 못 해요.”


  “잘됐네. 그럼 그냥 들어가.”


  “네?”


  “그냥 들어가서 놀면 돼.”


  “그냥 어떻게 놀아요….”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며, 실장이 뛰어 왔다. 


  “선생님, 왜 안 들어오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유 선생은 “알겠어. 좀만 기다려.”라고 대답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교과서를 챙겼다. 정신 없이 학생을 따라 교실에 들어가니 칠판 가득 적혀 있는 ’무.서.운.이.야.기.해.주.세.요.‘라는 글귀에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핑 돈다.


   “무.서.운.이.야.기!”

   “무.서.운.이.야.기!!”

   “무.서.운.이.야.기!!!”


   모두가 입 모야 합창을 하고, 유 선생은 배에서부터 목까지 모래가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오십 개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수첩은 없다. 유 선생은 좌우앞뒤에서 자신의 몸을 세게 잡고 흔들어대는 보이지 않는 손아귀를 느꼈다. 


“오늘은, 딱히, 재미있는 게 없는데….”


“그럼 지금, 재미있게 이야기 해요.”


“지금, 재미있는 이야기는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어떡하지…?”


“그럼 그냥 놀아요.”


“뭐하고 놀지?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이야기하고 놀면 되잖아요?”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는 학생들의 반응에 유 선생은 그만 무한루프의 감옥에 빠진 듯 절망했다. 그냥 노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재미있는 이야기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준비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조르던 아이들은 ’뭐야, 저 선생님, 생각보다 재미없잖아.‘라는 표정으로 괜스레 교과서를 들추었다. 



***


  그날 수업은 어떻게 되었는 줄 아니? 그야말로 공쳤단다. 나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끌다가 끝내는 자습을 주고 말았어.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지 못했고 교재 진도도 나가지 못했지. 예상 밖의 흐름이 감당이 되지 않았던 거야. 두려웠어. 


 그럼 수첩은 어떻게 되었냐고? 다행히도 찾긴 찾았단다. 그리고 얼마간 이야기 수업도 계속되긴 했어. 하지만 나는 그날로 예감하게 되었어. 언젠가는 이 수첩을 내려놓고도 이야기라는 걸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이야기 수업이 완성될 거라는 걸 말야. 내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교무실에 들어왔을 때, 그 무기력하고 무관심해 보이던 한 부장님께서 툭 던진 말씀이 귀에 쟁쟁 울려. 


  “유 선생, 이제야 수업다워지는 거야.”


  얘들아. 이제 이 일도 벌써 6년이 넘었어. 언젠가 우리의 일을 이야기로 쓰겠다던 약속을 오늘에야 지키게 되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너희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지?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조금 더 ’나‘와 가까운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거야. 그것도 설레는 일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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