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일기 Mar 16. 2024

런던 월세방 구하기(3):  뷰잉, 뷰잉, 또 뷰잉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런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런던에서 월세방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나의 한정된 예산 내에서 교통이 좋고, 적당히 살만한 정도의 크기와 깔끔함을 갖추면서,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가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야 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런던의 집들도 살기가 꽤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비쌌고, 가격이 아주 좋다 싶으면 선뜻 들어가 살 생각이 안들었다.


내가 집을 구하는데 찾는 조건


내가 찾는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 월세에 모든 Bill(각종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을 것

- 예산을 고려하여 월세는 가급적 1,200~1,500파운드 정도인 곳일 것

- 회사로 지하철 통근이 가능한 곳일 것

- 치안 측면에서 안전한 곳일 것

- 화장실이 포함된 En Suite Room일 것

- 하우스메이트 또는 룸메이트는 가급적 여성일 것

- 침대를 비롯한 가구가 모두 이미 설치되어 있을 것(Furnished)

- 깔끔할 것


위 조건들을 기준으로 SpareRoom, Rightmove 를 통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계속 검색을 했고, 내가 설정한 조건과 맞다 싶으면 집주인, 룸메이트, 부동산 중개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국사랑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연락한 경우도 많았다.



다만, 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은 결국 찾지 못했다. 좀 더 기다려서 시간을 두고 집을 구했다면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비용도 너무 비싸고, 빨리 짐을 풀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시한을 정해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내가 정해둔 기한 안에는 위 조건을 일부만 만족하는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고, 월세가 내 예산 안에서 충분히 해결되기까지 하는 그런 집은 서울에도, 런던에도 없다.


내가 포기한 조건은 두가지 였는데, 첫째로 가격 면에서 타협을 해야 했고, 두번째로 룸메이트가 모두 여자인 집은 정말 찾기가 힘들어서 포기하게 되었다.


런던에서 임장을 해보다니


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은 많은 사람들과 연락하여 내가 당신의 임차인이 되기에 큰 하자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는 것이라 몹시 피곤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거의 2주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이스트런던과 웨스트런던을 왔다갔다 하면서 많은 곳들로 뷰잉을 다녔다. 그래도 덕분에 런던의 여러 동네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고, 플랫, 고급맨션, 하우스 등등 런던의 다양한 집들을 둘러볼 수 있어서 한국에서 임장하듯 런던 부동산 임장을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예산을 1,000파운드로 정했었지만, 그 가격으로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아야 감이 온다는 사람들 말이 내가 직접 이집 저집 다녀보니 체감 되었다. 뷰잉을 10군데 정도 넘게 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매물을 올린 글만 보아도 애초에 제끼고 연락해볼 필요조차 없는 곳들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돌아다녀보니, 공통적으로 유모차와 교복 입은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동네들이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좋고 치안도 좋은 것 같았다. 살기 좋다고 알려진 동네들에 가면 어김없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애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기억에 남는 뷰잉 에피소드


에피소드 1 : 영화 원티드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것만 같은 기찻길 옆 집


내가 제일 처음 뷰잉을 갔던 집은 Elphant&Castle 지역이었다. 첫 뷰잉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방 창문을 열면 바로 Tube 선로가 지나는 곳이었기 문이다.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오는 "원티드"라는 영화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방 창문 바로 옆을 지나는 기차 때문에 늘 힘들어하던 장면이 나오는데(아래 링크 참조), 바로 그 영화속 집을 연상케하는 집이어서 너무 신기했다. 여기에 살면 나도 어느날 안젤리나 졸리에게 스카웃 되어서 총알을 휘어지게 쏠 수 있게 되려나?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https://youtu.be/oHLd_wmVCPA?si=CmGlD9DiLrRW9phm


기찻길에 대한 내 걱정을 알아챘는지, 부동산 중개인이 창문을 닫으면 방음이 잘 되어서 기찻길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몇번이나 확인을 시켜주었다. 방 크기도 적당하고 깔끔하기도 한 점은 좋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욕실도 한층 아래에 있는 상황이어서 계약하지 않았다.



에피소드 2 : 자꾸만 세수하고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영국 할머니


웨스트런던에서 뷰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날 연락해두었던 캠든 타운의 어느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실 전날 저녁에 다음날 오전 중에 뷰잉을 하자고 집주인과 간단히 얘기해둔 상황이었고, 나는 웨스트런던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캠든타운에 들러 집을 보는 동선을 짜두고 이동중이었다.


그런데 웨스트런던에서 뷰잉을 마치고 캠든타운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보니 다른날 뷰잉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가급적 오늘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는데 연세가 꽤 많은 할머니셨다. 본인이 아직 세수를 하지 않았다며 30분 정도만 기다려주면 안되냐는 것이었다. 다음 뷰잉이 이스트런던 쪽에 잡혀 있어서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했더니, 세수에 필요하다는 시간이 30분에서 15분, 10분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게다가 본인도 한국 친구가 있으며, 이번 여름 휴가 때 한국에 놀러갈 계획이라는 등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 통화하는 시간에 이미 세수를 열번을 하고도 남았을것 같은데 할머니는 계속 세수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당장 집을 못구해서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초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안되겠어서 겨우 겨우 전화를 끊었는데, 그러자 이번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갈수 없다고 문자를 보내고 그 집은 보러 가지 않았다. 왠지 직접 보러 갔으면, 그리고 만약에 그 할머니 집에 살기라도 했으면 매일 할머니와 하루 몇시간은 대화를 해야 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피소드 3 : 화이트채플의 추억


화이트채플은 시내 중심에 있지만 주거지역은 아니어서, 복도식 아파트와 같은 집들을 주로 뷰잉할 수 있었다. 건물이 낡아서 깔끔한 인상은 받지 못했기에 교통은 좋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계약하지 않았다. 아주 나중에서야 화이트채플도 그다지 치안이 좋은 곳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주 회식에서 어느 주니어 직원을 만나 즐겁게 얘기를 나눴는데, 그가 마침 화이트채플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반가운 마음이 들어 "오! 나 화이트채플에 뷰잉하러 갔었어!"라고 하자 그가 "근데 넌 화이트채플에 살지 않기로 했겠지?"라고 해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응..."이라고 했더니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가 빵터졌다. 내가 받았던 인상 그대로 화이트채플의 주거환경이 일반적으로 좋게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듯 했다.


에피소드 4 : 첼시에서 만난 빅토리아 베컴 직원


첼시는 전통적인 부촌 중 하나다. 집들도 예쁘고, 거리도 예쁘고, 뷰잉을 갔던 집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라는 주인도 친절하고 좋았다. 그는 빅토리아 베컴 회사의 직원이라고 했는데, 내가 빅토리아 베컴도 만나보았냐고 했더니, 같이 일하면서 자주 본다면서, "데이비드도 몇번 만났어"라고 했다. 뷰잉을 같이 갔던 남편이 돌아오는 길에 "데이비드 베컴을 '데이비드'라고 불렀어..."라며 베컴 가족을 친근하게 부르는 그녀를 신기해했다.


집도 쾌적하고, 화장실도 따로 쓸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거실의 큰 창문으로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지는게 좋았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점이 있었으니, 내가 집을 보러간 당시 집주인의 방이 잠겨있었는데, 잠긴 방문 뒤로 프렌치 불독이 계속 짖어대며 방문을 긁고 있었다. 집주인은 "오늘 처음 만남이라 우리 개가 너무 흥분해서 너한테 달려들까봐 잠궈뒀는데, 친해지면 괜찮아. 우리 개는 절대 안물어."라고 했지만, 프렌치 불독과 함께 동거를 할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모든 좋은 조건들에도 불구하고(심지어 가격도 착했다) 계약을 포기했다.



에피소드 5 : 룸메이트에게 반해 살고 싶었던 집들


뷰잉갔던 집들 중에 룸메이트가 너무 좋아 보여서 계약하고 싶었던 집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버몬지의 큰 길가에 있는 1층 방에 갔을 때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 간호사를 만났을 때였다. 원래 오기로 했던 부동산 중개인 대신 그녀가 집을 소개해주었는데, 예쁜데 친절하고 싹싹하기까지 한 그녀에게 만난지 몇분만에 반하고 말았다.



뷰잉을 같이 갔던 남편이 계속해서 집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지적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녀조차도 인정할 정도로 동네 치안이 안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로지 그녀 때문에 거기에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근데 그 친구가 언제든 계약 끝나서 떠날수 있는건데, 그래도 그 집을 계약할거야?"라고 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다른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카나리와프에 작은 냇물을 끼고 있는 아담하고 예쁜 집을 뷰잉하러 갔을 때는, 현재 살고 있는 임차인이 집을 안내해주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그가 잘생겼다는 이유로 그에게 반해버렸다. 집에서 10분거리 은행에서 IB업무를 하고 있다는 그는 무척이나 친절하게 집 구석구석을 설명해주었고, 집 상태도 좋았다. 다만, 내가 바로 결정하지 못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을 해버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그 집에 살 수 없게 되었다.



에피소드 6 : 스테프니 그린의 오래된 아파트 vs 베이커 스트리트의 스튜디오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다보니 스테프니 그린에 있는 집을 뷰잉하게 되었다. 이 동네도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동네 중 하나였는데, 버스를 타고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시내 중심가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동네는 둘째치고, 내가 보러 갔던 집이 너무 오래되어 거의 무너질 것 같아 보인데다 페인트를 칠한 것 빼고는 너무 지저분해서 악취와 페인트 냄새가 고약하게 진동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것 같은 방이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방이 비어있었는데, 중개인도 머쓱했는지 "방 상태는 별로 좋지 않지만 가격이 싸게 나왔다"고 묻지도 않는데 굳이 언급을 했다.



반면에 베이커 스트리트의 스튜디오는 주변 환경은 너무 좋았는데, 집 많이 낡기도 하고(물론 위의 스테프니 그린 집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은 컨디션이다), 무엇보다 집이 4층에 있는데 세탁실이 지하에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또, 빌을 포함하지 않은 렌트비가 1,700파운드인 점도 부담이 되었다. 이 집의 장점은 베이커 스트리트에 집이 있고, 교통이 좋으며, 큰 공원이 두개나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으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보여서 후보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에피소드 7 : 카나리와프의 고층아파트


카나리와프는 최근에 지은 건물이 많고, 삐까뻔쩍한 고층아파트들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의외로 고층아파트들의 높은 층수가 안정감을 떨어뜨리는 느낌을 주었고, 삐까뻔쩍한 부대시설, 편의시설을 쓰면 얼마나 쓰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런 시설들이 없더라도 조금 더 렌트비가 싼 곳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일거라는 생각에서 잠깐 혹하였지만 계약을 하지 않았다.



런던 월세방 구하기(1): 원하는 매물 찾는 방법 (brunch.co.kr)

런던 월세방 구하기(2): 런던의 집세는 얼마나 할까? (brunch.co.kr)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월세방 구하기(2): 런던의 집세는 얼마나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