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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Mar 24. 2024

런던, 이방인, 그리고 나

런던에서 Lost in Translation


평소 "혹시 너 외국에서 살 생각이 있어?" 라는 질문을 종종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분명한 "No"였다.




내가 어렸을 때, 삼촌들이 한꺼번에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할머니는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늘 아들들을 그리워했고, 노을이 질 무렵이면 창가에 앉아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할머니가 얼마나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지, 어린 시절부터 쭉 직접 보고 자란 터라, 나는 가급적 엄마한테 그런 일을 겪게 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이방인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이방인이 되는 경험들이 있었지만, 언어와 문화, 살아온 환경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적응하는 것은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런던에 오면서 그렇게도 확고했던 생각이 조금은 흔들리게 되었다. 한국과는 달리 다양성이 존중되고, 아이를 키우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은 문화의 자극, 경험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굳이 꼭 한국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런던에 와서 처음 몇 주간은 온갖 처음 겪는 새로운 자극들에 고무되어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것 같다. 치안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색다르고 재밌고 즐거웠다.


그러나 어디서든 처음은 쉽지 않다.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점심을 혼자 먹었다. 사람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내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문서만 보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갔다. 첫 출근날에 통성명과 인사를 거의 모든 팀원과 주고받았었지만, 이따금씩 오며 가며 "Hi"라고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심지어 인사마저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거의 혼자 지냈다.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장도 보러 가고, 나름 바쁜 일상이었다. 어느 날 동생에게 내 안부를 전하며 영국생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동생의 반응이 대뜸 "누나, 한국에 있는 거랑 완전히 똑같네. 회사 가고, 공부하는 게 전부인 거."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영국에 와서도 한국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집 밖에도 거의 나간 적이 없었다.




이렇게 지내다 갈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과 소통해보지도 않고, 이렇게 공부하고 일만 하다가 한국에 돌아간다면, 정말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하는 공부나 일은 굳이 런던에서 하지 않고 한국에서 해도 충분한 것들이다. 40년 만에 어렵게 얻은 기회를 이대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라도 좀 더 이곳, 그리고 이 사람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의 행사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참여하고,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회식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또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극내향형 성격을 거스르는 일이었기에 사실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극내향인이라고 해서 여기까지 와서 움츠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보려고 노력했다.


하나둘씩, 내 이름을 기억하고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도 있었다. 회사에 있는 어느 모임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수시로 물어봐주는 좋은 동료도 생겼다.  


하지만 반대로, 두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함께 앉아 있지만 대화에 끼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내가 가장 먼저 진단한 원인은 "영어"였다. 내 영어가 완전하지 못해서 그렇구나, 싶어서 영어 공부시간을 늘리게 되었고 매일 잘 때도 CNN을 틀어놓고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가 그렇게 단기간에 늘 수 없으니, 좌절감도 함께 쌓여만 갔다.


내가 문화적 차이나 회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 행동한 것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미국이나 영국의 문화를 배운 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이다 보니, 분명 실수를 한 경우들이 있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옆팀 동료이자 친구인 제니에게 이를 상의해 보았다. 제니는 듣자마자 바로 이런 현상의 원인을 "이방인이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대놓고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은근한 차별은 늘 존재한다고. 그리고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여건상 그들과 가까워지기는 어렵다면서 내 할 일에만 집중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이런 얘길 듣고 나니 오히려 내가 너무 불필요하게 노력했나, 그런 노력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의식되었다. 런던에서의 생활이 처음으로 즐겁지 않았던 한 주를 보냈다.


만약 계속 혼자서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그저 적당히 사람들과 "Hi"만 주고받으며 지냈더라면, 이런 감정은 결코 겪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모든 행동들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 있는지,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알아보고 싶었다. 고통스럽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부끄럽게 까발려진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내가 시도해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고통이 없는 성장은 없다. 아직 실력도, 영어도 부족하고 극내향인으로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항상 어딘지 어색한 나에게 이 정도의 고통은 통과의례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설사 환영받지 못하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활짝 열었던 내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지는 않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솔직히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곧바로 모든 곳에서 환영만 받을수 있겠는가. 그러니 겨우 두달 남짓한 경험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말자. 그리고 사실은 어쩌면 그들도 바쁘고 시간이 한정된 하루 속에서 단순히 불필요한 것들을 신경쓰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정말로, 어디를 가든 어떤 이유로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머리 말고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고 좀 더 의연한 나 자신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이 세상 어디서든 삶이 항상 핑크빛일 수 없다. 이곳 런던도 마찬가지다. 달콤하고 맛있는 것들도 있지만, 쓰고 먹기 힘든 것들도 존재하는, 여기도 그저 사람 사는 현실세계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현실에서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맛보는 일은 거의 드물다. 지난 두 달이 달콤하고 꿈만 같았던 건, 내가 현실에 두 발을 내딛지 않고 공중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런던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진짜 런던을 경험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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