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도화지는 무슨 색깔인가요?
우리가 사는 지구는 드넓고 아름답다. 나는 그 사실을 또래보다 빨리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정반대 편에 있는 남아메리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접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끝무렵, 하루를 꼬박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도착한 상파울루 구아룰류스 국제공항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처음 보는 언어로 적힌 표지판, 나와 다르게 생긴 행인들, 그리고 후덥지근한 날씨와 코를 스치는 야자나뭇잎 냄새.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되새기면 머릿속에 선명한 장면이 떠오른다. 공항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직원이 던진 한 마디,
"Bem-vindo!(환영합니다!)"
그렇게 4년간의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한 마디로 모험이었다.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집과 학교에 적응해야 했다. 포르투갈어는 고사하고 영어조차 서툴렀기 때문에 물건을 사거나 동급생과 대화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한 동급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How's going?"
그러나 "How're you?, I'm fine and thank you"만 공부한 나는 이 기출 변형에 당황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I don't speak English, sorry"
그 아이의 당황한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지만 그 당시는 모든 게 긴장되고 두려웠었다. 그나마 주어, 동사, 목적어를 갖춘 문장을 말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No English"라고 대답했으면 고독한 학창 시절을 보낼 뻔했다.
이렇듯 유학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움에 부딪히고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지평선은 점차 넓어졌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그 경험이 보다 새롭고 낯설수록 성장의 크기는 커진다. 색다른 경험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쉽게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하는 브라질의 모습은 어떤가? 아마 아마존과 피라냐를 떠올리거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랜드마크인 거대 예수상을 떠올릴 것이다. 브라질로 가기 전, 친구들은 내가 정글에서 지내면서 원주민과 피라냐를 보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나 역시 그런 삶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새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맥도널드를 먹고 도착 후에 짐을 풀면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야자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고속도로의 폭이 한국보다 2배 정도 넓었다는 점이려나. 어찌 됐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환경이 주는 매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나와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문화 다양성을 이해하고 누군가를 편견 없이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남미의 자연과 유적지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외감이 느껴졌다. 수천 년간 자연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 홀로 서 있으면 가슴속의 불안과 걱정은 사라지고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작 17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겸손함을 가르쳐준 건 학교수업이 아닌 자연이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제일 그리운 건 여행이다. 나의 카톡 프로필 뮤직은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이고 개인정비 시간에는 여행 유튜버 영상을 시청한다. 근무지에서 민항기가 이륙할 때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맑은 하늘을 바라보던 어느 날, 문뜩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비싼 비행기표와 숙박비를 지불하고 시간과 에너지까지 투자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1] 여기서 여행 횟수와 여행 만족도가 증가할수록 삶의 만족도도 증가한다. 즉, 좋은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친 삶을 힐링하기 위해, 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배낭과 캐리어를 챙기고 집을 떠난다. 많은 이가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삶을 풍족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새로움이 주는 설렘이었다. 유학생활 동안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책에서만 보던 유적지까지 여행하면서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니 마치 미지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개척하고자 바다로 나간 수많은 항해사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다음 여행은 어떤 세상과 마주할까?' 여행이 주는 묘미에 중독된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유가 있으면 국내외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삶의 무색(無色) 도화지는 유학생활과 종종 떠나는 여행이 선물한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었다.
여행은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우리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 여행은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있다. 여권이 사라지기도 하고 기대했던 식당이 문을 닫기도 한다. 대중교통도 잘못 타고 날씨가 안 좋아서 일정이 틀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안내 데스크에서 서툰 영어로 여권 분실 신고를 하고 다른 맛집을 찾는다. 당면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나중에는 웬만한 상황은 침착하게 대처하게 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나를 믿게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자포자기식 외침이 아닌 자신감의 산물인 것이다.
살다 보면 삶은 투쟁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눈앞에 있는 벽을 넘으면 또 다른 벽이 우리를 맞이한다. 큰 돌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시시포스(Sisyphos)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실패의 굴레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실패는 아프기만 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노력의 원동력을 잃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라고 외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끝없는 비탈길 위에서 도전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노력은 살갗을 에는 바람으로 돌아온다. 불확실성이 주는 시련인 것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믿는 자신감이다. 어차피 삶은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인생의 매 순간이 선택을 강요하고 그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내린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배짱이 필요하지 않을까. 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문제에 당면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 정도일쯤이야!'
근무지에서 보이는 활주로에는 V1 속도가 존재한다. 항공기 이륙 결심속도인데 이 속도를 넘으면 항공기는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 무조건 이륙을 해야 한다. 조종사는 자신을 믿고 레버를 당겨 하늘 위로 날아가야 한다. 삶에도 이처럼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여행을 가라고 말하고 싶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도화지를 다양한 색깔로 채우길 바란다. 그럼 분명 인생이라는 활주로에서 V1 속도로 달려야 하는 순간, 창공을 가르는 한 마리의 매처럼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믿는다.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자.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드넓고 아름답다.
[1]: [KCTI-INFO제 53호] 여행을 하면 정말 행복 해질까?(2016). 한국문화관광연구원. https://www.kcti.re.kr/web/board/boardContentsView.do?contents_id=14_916
[2]: 시시포스의 형벌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unishment_sisyph.jpg#filehistory
『계획과 무계획, 그 사이 어딘가』
https://brunch.co.kr/@koroshst2/4
『미니멀리즘, 버림의 미학』
https://brunch.co.kr/@koroshst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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