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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카페 Apr 08. 2023

행운을 얻는 방법

봄날에 찾아온 행운



봄날의 행운


최근에 휴가를 나갔다. 메마른 가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던 저번 휴가와는 다르게 집에 가는 길은 벚꽃이 만개하고 따뜻한 햇살이 군복을 비췄다. 휴가 가는 길은 늘 가슴이 뛰고 즐겁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기분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마치 봄바람을 타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따뜻한 행운처럼 느껴졌다.


첫 행운은 부대 정문으로 걸어갈 때 찾아왔다. 내 근무지에서 부대 정문까지는 족히 30분을 걸어가야 한다. 아침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중, 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추더니 창문 너머 운전자가 타라고 손짓을 했다. 그렇게 모르는 부대 간부님이 나를 정문까지 태워주셨다. 정문에 도착하자 그분은 어딘가 정겨운 목소리로 날 배웅해 줬다. "날씨도 좋은데 휴가 잘 보내고 와!" 

그분의 친절 덕분에 체력도 아끼고 기차 시간 전까지 여유 있게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행운은 지하철 역에서 만났다. 기차 시간에 맞춰 승강장으로 가는데 5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군인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두 손을 꼭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자 하루의 시작을 반기는 개나리꽃이 떠올랐다. 아직 20대 초반(?)인 나에게 아저씨 소리는 조금 가슴 아팠지만 나이 차이를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스스로 납득했다. 어쨌든 그 아이의 인사가 사회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기분이 들었다. 


세 번째 행운은 버스에서 만났다. 역에서 나오자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눈앞에서 지나갔다.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이라 배차 간격이 길다 보니 그 버스를 잡기 위해 달려갔다. 기사님은 사이드 미러로 나를 보셨는지 버스를 잠시 멈춰주시고 내가 탈 때 친절하게 인사해 주셨다. "좋은 아침이에요, 수고가 많아요."

'이렇게 기분 좋은 하루가 있을까', 기사님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왠지 모를 행복감을 느끼며 집에 도착했다.



친절과 관대함


내가 만났던 행운은 모두 친절과 관대함에서 왔다. 둘 다 우리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현대인의 하루는 정신없이 굴러간다. 방대한 업무와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서로 도우면서 살기보다는 경쟁하기 바쁘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순위를 매긴다. 그렇게 사회에는 거절과 경계심이 자리 잡고 우리의 유대감은 갈 곳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타인을 위해 행동하면 배신당할 위험이 있고 경쟁에서 밀려 성공할 기회를 놓칠 거라 믿는다. 혹독한 경쟁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는 명확하고,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유리하다는 믿음이다. 그렇게 친절은 의심으로, 관대함은 동정심으로 변질된다.

이 두 가지 개념이 결여된 사회에서 살기란 쉽지 않다. 따뜻한 한 마디가 주는 행복을 잃어버리고 삶은 비관주의로 가득 찬다. 누군가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말하면 응원하기보다는 비판부터 한다. 

요즘 그 분야는 비전이 없대
거기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도 이제는 꿈만 꿀 나이가 아니야

이런 말 뒤에 따라오는 한 마디,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타인을 걱정하는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내면에는 상대방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비관주의가 섞여있다. 친절을 빙자한 날카로운 관심의 표현은 듣는 이의 마음에 미묘하지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렇게 자신감은 흐르는 피처럼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용기 내며 걸어갔던 길은 의구심의 안개로 가득해진다.

여유 속에서 흘러나오는 관대함은 가뭄을 맞이했다. 기술은 발전하고 생활 수준은 높아지는데 왜 우리는 여유와 멀어지고 있을까? '정'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감정은 추풍낙엽처럼 제자리를 떠나고, 수많은 현대인은 불안과 우울을 마주한다. 여유가 없으니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에 걸맞은 대화를 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아 한다. 휴가를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요즘 100만 원이나 받는다면서, 군생활도 편한데 돈도 많이 받네." 


주변 지인은 물론 처음 대화한 가게 직원이나 택시 운전사에게도 듣는 말이다. 나의 군생활을 옆에서 보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가볍게 내뱉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내 몸속에 흐르는 친절과 관대함도 메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혹자는 예전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외치지만,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에게 따뜻한 응원 한 마디를 해주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으냐고 되묻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100만 원은 병장 월급이다. 상병은 80만 원이고 일병은 68만 원이다. 그러니 상병과 일병에게 이 말은 사실무근이다)


인생은 흑과 백의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인 회색 영역에서 삶을 영위한다. 이 영역은 흐릿하고 복잡해서 신중을 가하지 않으면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타인과 대화할 때는 회색성의 모호함을 고려하면서 의견과 조언을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대화와 공격은 '공감'이라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둔 채 우리를 시험한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는 그 사람의 고유 영역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겸해져야 빛을 발할 수 있다.




행운을 찾는 길


친절하고 관대하기란 어렵다. 나 자신도 이 두 가지를 의식하면서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만약 친절을 베푼 행위가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지하철 역 앞에서 누군가가 통화를 하면서 카드를 떨어뜨린 걸 보고 주워드린 적이 있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카드를 가져간 후 갈 길을 가버렸다. 딱히 보답을 바란 행위는 아니었지만 감사 인사정도는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괜히 생각에 잠긴다.


그래도 사회는 친절과 관대함을 높게 평가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몸에 밴 사람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나도 휴가 때 만난 네 잎클로버 분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보니 여유가 사라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관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사회를 행운의 벌판으로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위는 그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선한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는 마치 도미노처럼 어떤 이에게 받은 친절을 다른 이에게 베풀고 싶어 진다. 그렇게 행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 간의 관계의 농도는 짙어진다. 나는 도미노의 종착점이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에 가까울 것이라 믿고 있다. 


푸르른 4월, 벚꽃이 만개하고 봄햇살이 부드럽게 길을 비추는 오늘은 누군가의 행운이 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 배경화면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Couleu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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