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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카페 Jun 01. 2023

인간은 완벽해질 수 있을까?

완벽함의 의미와 그 너머로




완벽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완벽주의자다. 맡은 일이 있거나 목표를 세우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완벽해지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며 만일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책망하고 무기력해진다. 내가 생각해도 참 까다로운 성격이다. 


이런 내가 완벽함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최근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힌 피부염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여드름으로 붉고 오돌토돌 올라온 피부는 극심한 스트레스였고 완벽한 피부를 향한 욕구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비싼 화장품을 사고 피부과를 다니면서 관리했지만 불규칙하게 생기는 피부 염증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랄까, 피부가 뒤집혔을 때는 타인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기 힘들었고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누군가는 내가 피부에 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원래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 곳에 시선이 꽂히기 마련이다. 이런 나와 피부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밀린 것이 최근 한 달이다. 입대하고 1년 3개월 동안 끊임없이 피부 관리를 했다. 휴가를 나가면 미용 관련 제품을 한가득 들고 복귀했으며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식단도 조절했다. 그러나 잦은 훈련과 수면 부족으로 인해 생긴 피부염은 막을 수 없는 불길이었다. 기지 병원은 피부과 진료가 없었으며 휴가는 3주가량 남은 상태였다. 염증은 얼굴 전체로 점차 번져갔지만 훈련과 야근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완벽에서 멀어지는 자신을 볼 때마다 쌓아온 노력이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고 바닥을 기어가는 자존감과 투쟁해야 했다. 그렇게 좌절의 골짜기를 정처 없이 떠돌던 와중, 문뜩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대체 완벽함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완벽함을 향한 집착


피부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피부의 기준이 무엇일까. 모두가 원하는 뽀얗고 깨끗한 아기 피부일 것이다. 그러나 내 피부는 이미 흉 지고 주름진 세월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유년시절의 피부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치료를 하고 좋은 화장품을 사용해도 시간이 일으킨 풍파는 삶의 일부로 내 피부에 담겨 있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시간은 나를 젊음으로부터 점차 떨어뜨려 놓을 것이다. 결국, 지금 겪고 있는 피부염이 사라져도 완벽한 피부를 향한 집착은 새로운 불만을 찾아낼 것이며, 흘러넘치는 욕구에 물든 자존감은 그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스스로를 규정하는 색깔을 잊고 살았다.


우리는 언제 완벽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까? 완벽함의 근원은 타인과의 비교다. 나는 피부가 좋은 사람을 보면 부러웠고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그가 추천하는 화장품을 구매하고 생활 습관을 따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와 똑같은 피부를 얻을 수 없었고 그 사실에 여러 번 좌절했다. 이러한 집착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완벽함을 바라보는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안에는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엄친아/엄친딸'이라 부르며 질투의 눈빛을 보내는가 하면 학교나 직장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어딘가 부족하게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못 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것을 뛰어넘고자 매사 노력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완벽함을 향한 노력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이고 후자는 타인이라는 외부의 힘에 휘둘리는 것이다. 완벽해지고 싶다면 자신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항상 우위를 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는 끝이 없다.


현대 사회는 완벽이라는 말을 상업적 도구로 사용한다. 이 가전제품만 있으면, 이 교재만 공부하면, 이 화장품만 바르면 당신의 삶, 능력, 외모가 완벽해질 수 있다고 광고한다. 마치 이것들이 없어서 내 삶이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외부의 힘이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어주지 못할뿐더러 완벽함은 애당초 인간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고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함을 상징하는 '신'이라는 존재를 숭배하며 결정의 순간에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삶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고 실패와 좌절을 마주한다. 우리의 행동은 도덕이라는 가치판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우리의 신체는 꽃이 피고 지듯이 젊음의 기운을 잃고 주름진다. 우리의 본질은 무엇 하나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완벽함의 너머로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의미가 없는 행동일까? 어차피 완벽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할 수 없다면 우리가 행하는 노력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걸까? 나는 우리가 '성장'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성장은 스스로가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이루면서 점차 자신만의 개성을 만드는 행위다.

 

코비 브라이언트, By Matias Grez, Patrick Sung and Ben Church, CNN


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농구부에 들어가서 여러 경기에 참여했다.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선수는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다. 농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지만 성장을 대표하는 선수는 코비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던을 농구계에서 '완벽한 선수'로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던을 롤모델로 삼고 그가 하는 모든 동작을 따라 했다. 연습하다가 모르는 게 있을 때는 새벽에도 개의치 않고 그에게 문자와 전화를 해서 농구 동작을 물었다. 그렇게 조던의 페이드 어웨이 슛부터 드리블 방식까지 모든 걸 얻었다. 그렇다면 코비는 자신이 원했던 '완벽한 조던 2세'가 되었을까? 그는 여러 방면에서 조던과 비교당했다. 조던의 특출 난 신체능력과 농구 센스까지는 따라잡을 수 없던 그를 전문가와 관중은 조던의 하위버전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완벽함을 모방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켰다. 다른 선수보다 유연성이 뛰어났던 그는 리버스 덩크와 턴 어라운드 샷에 있어서는 조던보다 특출 난 실력을 보였다. 뱀처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본 관중은 '블랙 맘바(Black Mamba)'라는 별명으로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NBA 역대 선수로서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코비는 자신이 원했던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일궈냈다. 이와 같이 노력의 방향성은 비교의 틀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코비는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했기 때문에 조던과 비교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으며 그의 자존감은 단단하고 빛이 났다. 이렇듯 불완전한 생명체인 인간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나'라는 자아가 존재함을 깨닫고 매 순간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그렇게 자아실현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간다. 물론 그 길 위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그것에 걸려 넘어진 상처는 쓰리며 어떨 때는 흉터가 남아 그 고통이 정신에 각인된다. 지친 육체는 허무함과 우울감에 휩싸이고 계속 걸어가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굶주린 자아는 끊임없이 전진하기를 원할 것이며 우리의 자존감은 비교의 늪에서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아를 다듬는 조각가이며, 삶의 만족감은 거친 대리석이 정교한 '나'로 변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보다 단단하고 정교하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철학자 니체의 외침은 자연의 본질을 꿰뚫는다. 아름다운 진주는 조개 속에 침입한 이물질을 막기 위해 내뿜는 물질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다. 빛나는 진주는 조개가 마주한 시련에 끊임없이 맞서 싸운 투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는 진주의 크기가 클수록 조개가 겪은 시련이 길었음을 알 수 있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나이테가 많은 나무일 수록 계절의 시련을 오래 견뎠으며 두껍고 단단한 몸통을 가진다. 이 커다란 나무는 새들의 집이 되어주고 무더운 여름날 우리에게 더위를 피할 그늘을 제공한다. 이들을 통해 자연은 '고난 없는 성장은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로서 이 진리를 따른다. 숱한 고난을 극복한 이는 눈빛과 분위기가 다르다. 그의 내면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진주처럼 밝게 빛난다. 그는 비교의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코 거만하지 않다.


최근 부모님의 얼굴에서 전에는 몰랐던 주름이 눈에 밟힌다. 입대하고 자주 뵙지 못해서인지 시간의 흐름을 새삼 느낀다. 어머니는 자신의 주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바른다. 하지만 난 그들의 주름을 존경한다. 그 주름은 가정을 지키고 어리숙한 자녀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다듬어준 숭고한 희생의 흔적이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견딘 시련 속에서 생긴 그들의 주름을 그 누가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겠는가.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다. 비록 주름이 생기더라도 단단하고 정교한 나무 같은 그들처럼.


피부 때문에 우울하던 어느 날, 나는 책상에 앉아 이 우울한 기분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자아에게 물었다. 그것은 '너답게 있으면 된다'라고 답했다. 난 아직 나다운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걸 찾기 위해 지금 글을 적고 있으며 앞으로도 적을 예정이다. 언젠가는 찾을 나의 가치를 위해서.




P.S. 아, 참고로 마음을 편하게 먹은 지금은 피부가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역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다.



Reference

코비 브라이언트 사진

https://edition.cnn.com/interactive/2020/01/sport/kobe-bryant-life-timeline-spt-intl

By Matias Grez, Patrick Sung and Ben Church,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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