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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ug 16. 2023

나는 '나'를 만나러 갔다

수줍은 메모


너에게 가는 41Km 어디쯤

44분만큼 외롭고

그만큼 그립다.


밤새 꾹꾹 눌러쓴 말들은

까맣게 까맣게 멍들다

물둘레가 되어 훑어진다.





뜨거운 볕이 따가워지면

자전거 페달도 멈춘다.

뒤처진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메모지를 뒤적이다가

오래된 메모가 피식 미소를 짓게 한다.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 조각 하나다.

반송될 것 같은 마음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오래된 진심을

이제 무심하게 바라본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이라서 변하는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사랑은 변하는가 보다.





드디어 금강이다. 묵직하게 소리 없이 흐르는 강.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광활한 침묵이 흐른다. 돌아선 남자의 뒷모습을 닮은 강. 오래 보고 있으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두렵기까지 하다. 이름이 '금'. 특이하게 한 자뿐인 이름을 가졌다.


"너는 왜 말이 없니?" 혼잣말을 금강한테 한다.

누구나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귀 기울여 줄 상대를 찾는데,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반응해 주기를 바라는데, 어떤 이는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너는 무심하구나. 침묵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그래서 나는 네가 두렵다.




화난 볕이 좀 부드러워질 때까지 약 서너 시간. 기다리기 지루하면 메모장을 펼치거나 혼자 묻고 답하기 게임을 한다. 물론 입이 아닌 글로. 가끔은 입으로 할 때도 있다. 자전거 탈 때 아니면 메모를 녹음으로 남기고 싶을 때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을 한다.

 

"자전거 여행 중에서 어느 때가 제일 기쁘냐고 누가 묻는다면?"

"마실 물을 발견했을 때, 편의점에서 시원한 게토레이를 벌컥벌컥 마실 때."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으세요?"

"전혀요. 자전거 타보세요. 몸이 너무 힘들 때는 뒤에 실린 봇짐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버리고 싶어 집니다."

"그럼 왜 자전거로 여행을 하세요?"

"그 맛이 너무 기가막기고 복잡한 맛이어서 짧게 설명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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