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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ug 15. 2023

나는 ‘나’를 만나러 갔다

감정 vs 이성

이화령 고갯길에서


두 바퀴



조건 없이 신뢰하고

두려움도 없이

힘을 더해주고 밀어주는

뒷바퀴가 있어서

앞바퀴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뒷바퀴는 뒤에 있다고

힘든 일만 한다고

진창을 갈 때에도

거친 자갈길에서도

가시밭길에서조차

원망하지 않았다.


어둡고 깜깜 길에서도

두려워하지도

조바심을 내지도 않고

앞서가는 길을

묵묵히 함께 동행한다.


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앞장서야 하지만

그런 운명을 탓하지 않는

앞바퀴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두 바퀴는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이끌어가는

주인을 믿는다.


사막 같은 길 위에서도

길 없는 길에서도

두 바퀴는 주인을 믿고 따른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지 몰라도
두 바퀴는

주인이 가는 길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앞서 가고

뒤에서 힘을 보탠다.





‘이미 멀리 보고 숙고하여 결정했으면 한 걸음씩 앞만 보고 가자.’라던 첫 마음은 이화령 고개를 오르면서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자주 망각하던 히브리민족. 탈출기 내내 그들을 괴롭혔던 노예근성이 슬그머니 다시 고개를 든다.


1 감정: “오늘 당장 완주하지도 않을 거면서 이화령 고갯길은 왜 선택한 거야. 힘들어 죽겠네. 너의 이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꾸 그 이성이 몸을 학대하고 일을 벌이는 쪽으로 결정을 내는 걸 보면 분명 너의 이성은 고장 난 거야.”


2 감정: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 이화령은 다음에 가자. 금강하굿둑까지 가려면 체력을 아껴야지.”


1 이성: ”스텝 바이 스텝. 한 걸음씩 나아가자. 오래 계획했고 충분히 검토했고 네 체력도 이 정도 고개는 넘고도 남을 만 해. 이미 중간 고지를 넘어섰잖아. 휴게소도 저 앞에 있어.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가자. “


2 이성: “이 정도 힘든 일에서 자꾸 계획을 바꾸고 중간에 포기하고 그러면 앞으로 이 보다 덜 힘든 고개를 만나도 또 쉽게 계획을 변경하게 되겠지. 그러면 이 여행에서 계속 내리막 길만 선택할 거야?”


1 이성: ”그래. 맞아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 길은 없어. 상대적인 법칙은 일반적이잖아. 오르막이 높으면 반대로 그만큼 내리막도 길다는 이야기잖아. 요 며칠 새 그 많은 산과 강을 건너면서 경험한 거잖아. 이 고갯길보다 더 높은 고개도 쉬엄쉬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곧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시작지점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마지막 지점이 있는 것이니까.”





감정이 전달해 주는 사실에는 진실이 과연 몇 프로나 포함되어 있을까? 5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내 감정이 전달해 주는 사실에 매우 낮은 점수를 준다.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 신뢰도가 매우 낮다.


내 이성은 조심성이 너무(?) 많아서 쉽고 익숙하며 엔트로피가 낮은 방법(길)을 선호한다. 내 이성은 그동안 사소한 상황이나 사건 속에서도 위험이라는 경고를 수시로 남발하는 경향이 많았다. 어릴 적 엄마 같다.


반면 한풀 꺾인 나이에도 내 감정은 사춘기 때 동네 형(?) 같다. 엔트로피가 높은 길을 선호한다. 신뢰도는 낮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다양한 방법(길)을 찾는다. 익숙하고 쉬운 길이나 특별하지 않은 방식에는 시큰둥 별반응이 없다. 호감도 가지지 않는다.


신뢰도는 낮지만, 엔트로피가 높은 불확실한 길을 선호하는 감정과 경험치가 높고 안전하며 확실한 길을 찾는 이성의 대립은 잦은 마찰을 일으킨다. 선택은 내 마음에 달렸다.




내 마음(심장)은 아직 젊다. 내 심장 속에 살아 있는 영혼은 여전히 활기차다. 그만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다. 내 영혼은 내가 비록 혼자라고 느껴질 때에도 ‘사람의 영혼은 결코 홀로 있을 수 없고, 또 그렇게 영원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혼의 속성이 공동체성이라는 것은 혼자일 때 더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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