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그리고 함께 가는 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늘과 바람과 구름 사이
무소처럼 달리는 길
‘나-너’가 없는 입술에
거미줄이 쳐진다.
입자가 질량을 잃는 순간처럼
시간은 느려지고
마음은 기억과 영혼 사이
거기 어디쯤에서 멈춰 선다.
마치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내 영혼이 네 작은 숨결에 떨릴 때,
허물이 벗겨지는 그 찰나에
나는 나를 망각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 11-12)
고령고갯길에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후, 학습의 효과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짧지만 어려운 길이 아닌 길지만 편한 자전거 길을 선택한다.
길 따라 산 길을 돌아 강물을 거슬러 간다. 이 물길이 처음 시작된 길로 가는 이유는 거기에 이 여행의 끝이 있어서다.
강물이 흐르는 길에 사람이 사는 길이 있고, 시간이 흐르는 길에 그리움과 지혜가 자라나는 것 같다. 몸은 물을 먹고 마음과 영혼은 시간을 먹고사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로 가야 길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사람다움의 길, 함께 가는 길. 그 길 위에 영원으로 가는 길(도)이 있는 것 같다. 어쩌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반갑다.
짝을 찾는 매미의 우렁찬 노랫소리와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흐르는 강물에 보폭을 맞추며 산책하는 사람들, 강물처럼 흐르듯 지나가는 이 모든 이들과 함께 가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낙동강 자전거 길. 이들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늘그막 한 부부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물길 곁에 사람의 길이 있다. 그 곁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라 하지 않았던가.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니, 어짐이란 고요(靜)와 같고, 지혜란 움직이는(動) 것이니, 거기에 즐거움(樂)과 생존(壽)이 있다는 공자의 말이 마치 실존주의 철학을 음미하는 것 같이 달게 느껴진다. 황혼이 아름다운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