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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ug 13. 2023

나는 '나'를 만나러 갔다

피투 된 존재 vs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시 새로운 시작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나는

색 바랜 사진첩을 펼쳐본다.

보고 싶은 얼굴들과 그리운 시간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이 되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으리 믿었던 순간들이

금성처럼 반짝거린다.

혼자가 될 때, 나는

파도처럼 떠밀려 쌓여 있던

평범한 일상들 속에서

소중한 얼굴들을 보석처럼 건져낸다.

사막 같은 곳에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 나는

마침내 ‘너의 나’와 만난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신의 선물이 된다.




온전히 혼자 시작하는 아침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비상벨을 울릴 때까지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곳, 이 아침에 나는 나를 온전히 피투 된 존재로 만난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은 ‘피투 된 존재’이다. 그 어떤 존재의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세상(상황, 자리)에 던져진 존재’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부조리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아침 특별한 역설을 깨닫는다.  온전히 하느님과 나뿐인 이 사건 앞에서 나는 비로소 '피투 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것은 자유였다.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부여되지 않고 인간에게만, 무상으로 무제약적으로 주어진 선물인 자유. 그것은 이전의 나와 앞으로의 나, 또 나조차 모르는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한 냄비의 자유에 미지의 세계로 향한 설렘을 한 스푼 넣은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상쾌하고 희망 찬 시작이다. 하지만 어제 너무 무리한 탓인지 찌뿌둥한 몸에 근육통이 후추 양념처럼 뿌려진다.



그렇게 두 시간 뒤. 이름도 모르는 가파른 산 길을 오르던 내 입술과 생각은 온통 불평과 불만을 토해낸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히브리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뱉어내던 불평과 불만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탈출 14, 11-12.)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싶어서 이 뜨거운 뙤약볕으로 나온 것이냐? 집에 있었으면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때가 되면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뭐 어쩌자고 새벽부터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이게 무슨 짓이냐. 이름도 모르는 이 산속에서 마실 물도 떨어지고 햇볕에 말려 죽이려고!"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우리는 칼에 맞아 쓰러지고, 우리 아내와 어린것들은 노획물이 되게 하시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민수 14, 2-3.)


"정말 한 방울의 물이 먹고 싶다. 개울 물도 보이지 않고, 목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 아스팔트에서 반사되는 열기가 허파 속을 태우는 것 같다. 자전거까지 끌고 가야 하는 가파른 언덕길이다 보니 더 지친다. 돌아갈 힘도 없다. 물 한 방물만이라도 있으면, 입술과 혀라도 축일 수 있으면. 정말 죽기 직전은 아니니 아직은 전화하지 말자. 전화해도 누군가 오는 시간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고개까지만 넘어보자."




목이 마르고 타는 숨은 턱에까지 차오른다. '더 이상 못 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변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생각은 단 한 가지뿐이다.


"살아야 한다."


그런데 정말 왜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 죽는 것인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해서일까?


"살아야 한다."


온통 이 생각뿐이다. 그런데 왜 전화를 하지 않는가?


"저 앞에 물이 있겠지. 그래 바로 저 앞에 있을 거야."


정말 있을까? 왜 저 앞에 물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가. 왜 나는 그렇게 믿으려 하는가?


"있어. 정말. 잠깐만 쉬었다가 침으로 입술과 혀를 축이고 저기까지만 가면 있어."


"그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서서히  끓는점으로 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늘이 참 높고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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