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부부관계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아이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자녀를 만드는 이유로는 서로 너무 사랑해서가 대부분이겠지만, 일부 부부는 불확실한 부부관계의 끈을 만들기 위해 자녀를 낳는다고도 합니다. 보증이나 보험의 의미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오랜 행복을 자녀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이는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실제 연구로도, 자녀가 없는 부부는 자녀가 있는 부부보다 이혼할 확률이 약 40~5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 없이는 깊은 책임감과 연속적인 이벤트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 부부들은 아이를 낳는 이유로 "세상이라는 축복을 선물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세상은 기쁨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곳으로써 경험하지 않기에는(?) 분명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안겨 있는 포근함, 꽃이 핀 거리를 걷는 기쁨, 맛있는 음식을 먹는 황홀함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기에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런 면에 집중한다면, 이 세상에 축복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살아가며 우리는 반드시 병치레를 겪기도 하고, 정신적인 고통과 고민을 하고, 필연적인 슬픔등을 감당해야 합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깊이 고민해 보았나요? 세상은 온전히 축복이 아니라, 고통도 반드시 갖추어진 곳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재벌도 그들의 고통이 있고, 유명인도 매일 정신적인 분투를 해댑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태어나는 아이가 반드시 살며 고통을 겪는 것이 확실하고 그것을 알고 있다면, 아이를 낳는 행위가 윤리적인지에 대해 한번쯤은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초에 무(無)의 존재를 심연에서 꺼내어, 생로병사의 바다에 던지는 것이니까요. 과연 부부의 행복을 위해, 부부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부부의 행복과 관계 지속을 위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개인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포함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여러 철학적 시각에서 탐구해 보겠습니다.
1. 반출생주의(Antinatalism)
반출생주의는 모든 생명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봅니다.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겪게 될 고통과 불행을 고려할 때, 반출생주의자 들은 부부의 행복이나 관계 유지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완벽한 부양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 이는 새로운 고통과 불행을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결정입니다. 대한민국같이 부모 본인이 이 세상의 불행을 목도하고 있고, 미래의 고통을 명확히 예상할 수 있다면, 이는 아이에겐 확정된 고통을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칸트주의(Kantian Ethics)
칸트주의적 윤리에서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아이를 부부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면, 이는 아이를 도구화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따라서 비윤리적일 수 있습니다. 칸트주의적 시각에서는 아이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며, 그 존재의 목적이 부모의 필요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3. 가족의 탄생
가족으로서의 관계적 윤리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결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 발생할 책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사랑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이를 낳는 것은 부적절한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4. 세상의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삶의 본질적인 가능성과 의미에 대한 믿음측면이 있습니다.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출산을 선택했기에, 부처님도 나오고, 공자님도, 소크라테스도 탄생한 것이니까요 (예수님의 탄생은 부모의 선택으로 보기 애매해 뺐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단순한 부모 간의 결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양한 윤리적, 철학적 측면에서 깊이 고려되어야 할 한 사람의 인생문제입니다. 부부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부모의 가치관, 준비된 환경, 그리고 아이의 삶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신중한 평가에 달려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행복을 모두 포함한 '전체로서의 긍정'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책임에 대한 깊은 자각'인가?
우리의 결단은 아마도 이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