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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쏘에 Dec 28. 2020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에게

로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 2018)

이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참 많다. 안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고. 

나쁜 이들에게 당하거나, 사고에 휘말리는 죄 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진다.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그렇다. 가슴이 무거워, 차라리 보지 말까 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의 진한 감동은 결국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영화 포스터에서도 보이듯, 서로를 보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클레오는 멕시코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원주민 가사도우미다. 입주하여 살면서 집안일을 성실하게 한다. 특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마음을 다한다. 그 마음을 아는 네 명의 아이들 중 아직은 어린 막내와 유일한 딸인 셋째가 더욱 클레오를 따르고 의지한다. 항상 기대고 쓰담쓰담해주고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막내 아이가 형과 놀다가 싸운 후 맘이 상해서 죽은척하고 평상에 누워있는데, 클레오가 같이 죽은척하고 눕는다. 클레오는 늘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맘을 토닥인다.


사 남매의 엄마인 여주인은 남편이 바람나서 가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애꿎은 클레오에게 좋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기분 나쁜 상황이 올 때마다 곁에 있는 클레오에게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클레오를 함부로 대하는 못된 여자는 아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이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 시절의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가정의 위태로움 때문인지, 임신한 클레오를 버린 기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살인자가 나오는 영화도 아닌데, 심장을 죄여 오는 불안감이 웬만한 스릴러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오히려 너무나 있을법한 현실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불안한 예감이 틀렸으면 해서.... <그래비티>도 그랬듯 너무나 평화롭게 조용한 상황에서 숨 막히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뛰어나다.     


시종일관 죄이던 심장이 클레오가 아이를 잃을 때 쿵 내려앉아버린다. 죽은 아이를 가슴에 안은 클레오의 숨죽인 흐느낌은 너무 아프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지.... 집에서 멍하니 하늘만 보며 앉아있는 절망적인 그녀를 구원할 자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여주인이 가족여행을 같이 가자고 한다. 일은 안 시킬 테니, 같이 가서 기분전환하라고. 그녀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양쪽에 달라붙어서 같이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내키진 않지만 그녀도 여행에 동참한다.

그 여행은, 남편이 탔던 고급 세단을 팔기 전 마지막으로 그 차를 타고 떠난 여행이었다. 즉, 여주인 소피아가 남편이 떠난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출장 갔다고 거짓말했던 것을, 떠났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엄마가 새 직장을 구했으며 앞으로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 거라고, 함께 잘해보자고 으쌰 으쌰 하는 자리에 클레오도 일원으로 있게 한 것이다. 누가 봐도 그 가족에겐 클레오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치유되는 건 의외로 클레오이다.

수영도 못하는 클레오가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에 휩쓸린 아이들을 구해 나왔을 때 모든 가족이 안아주는데, 펑펑 울면서 그녀는 말한다. 아기를 원하지 않았고 태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유산한 엄마들이 그렇듯, 그녀도 자기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게 명백한데도 말이다. 그 죄책감으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랬던 그녀가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해냄으로써 절망에서 헤어 나온다. 

    

누군가의 부재가 한동안은 힘들겠지만, 

이렇게 그들은 남은 이들끼리 서로를 보듬고 토닥토닥 쓰담쓰담하며 또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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