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e 쏘에 May 27. 2020

현실에 사는 평범한 이에게

귀를 기울이면(콘도 요시후미) & 마녀 배달부 키키(미야자키 하야오)


대학 때 영화 동아리에서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은 그 시절 내게 컬처 쇼크였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도 아니고 바이올린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고, 이탈리아 유학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세이지는 중3이었다. 중학생이 진지하게 꿈을 꾼다는 것.

 

이것은 영화 속 세이지의 친구, 시즈쿠에게도 큰 충격이 된다. 

거대한 인생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세이지에 비해 줄곧 책만 읽었던, 그것도 세이지가 읽은 다음으로 읽었던 그녀는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작가에 도전한다. 소설을 써 보겠다고 학업을 내팽개쳐가며 엄청나게 애를 쓴다. 

장편 소설 하나를 완성한 후엔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꿈꾸고, 꿈꾼 것을 아주 열심히 펼치는 이 아이들이 무척 좋았다. 

중학생 시절 나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꿈을 꾸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진로에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내가 그러지 못한 변명을 하자면), 평범한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세이지는 금수저이다. 해외에서 살았던 할아버지의 사연 가득한 골동품 가게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가게 지하에는 바이올린 공방도 있다. 유학 갈 수 있는 길도 열려있고.... 

시즈쿠에게는 늘 공부하는 엄마와 성적이 곤두박질쳐도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믿고 기다려주는 아빠가 있다. 그래서 이 두 아이는 마음껏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본 후, 세이지나 시즈쿠보다 키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세이지나 시즈쿠의 삶은 너무 아름다워서 꿈같다. 반면 '마녀'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도 키키는 파라과이의 우리 아이들 같다. 공부보다는 일을 해야 하고,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 꿈꿀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 마녀라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재능도 없다. 

아름다운 바다 마을에 호기롭게 도착했지만, 13살 아이라서 쉬운 것이 하나 없다. 

그래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행동한다. 그 실천이 배달 일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고....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은 아닐지 모른다. 키키도 예쁘게 차려입은 의상 디자이너 언니를 선망의 눈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는 처한 환경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스스로 선택한 일을 진심을 다해한다. 

설레고 기대했다가 실망도 하고, 의욕이 충천했다가 낙담도 한다. 속상해서 앓아눕기도 한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키키의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어른들과 키키를 응원하는 친구 덕에 다시 힘을 낸다. 


“우울할 때도 가끔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자 키키가 부모님께 쓴 편지의 한 소절이다. 

참 평범한 말이지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음이 가는, 그래서 가슴에 와 닿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