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리 없는 장사 오딘뇽?
그 옛날, 내 그리운 어머니~ 쌀이나 보리, 햇마늘 등 곡식을 바리바리 머리에 이고 장에 가시는 날엔, 고기반찬이나 색다른 먹을 것이 으레 저녁상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늘 설레었다.
오늘은 5월 21일 해남장날 전통 오일장이 서는 날, 어머니는 떠나시고, "에누리 없는 장사 오딘뇽?" 하며 물건 값 흥정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공쥬와 삼식이의 해남 장날의 나들이를 통하여 허전한 마음을 달래 보기로 한다.
해남장날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오일장으로 요일의 끝자리 수가 1일과 6일에 해남읍 고도리 전통시장 장터 일대에서 선다. 해남장은 강진, 완도, 진도, 장흥 등 전남 어느 군에서 서는 전통 장보다 크다. 옛날부터 있던 고도리 장터를 채우고도 넘쳐서, 근처 사방의 도로를 점령하고, 그 너머 배드리 방향의 사람 다니는 길에 까지 장사진을 친다.
"5천 원에 주세요"
"6천 원 주셔야 된다니까요"
"다섯 마리 살 테니 5천 원에 주세요"
"허! 백 마리 사셔도 5천 원에는 안 된다니까요"
결국, 해남장 낙지 파는 아자씨 쥔장 한판승! 하하
낙지 한 마리당 6천 원, 5마리 3만 원 낙찰! 낙지란 모름지기 세발낙지가 최고! 그중에서도 대가리가 작고 발이 기다란 녀석들이 진짜배기!
세발낙지는 머리는 작고, 발이 가늘면서 길 수록 상품이다
"공쥬야 저 낙지들, 아자씨 말씀대로 머린 증말 작은뎅 다리는 엄청 기다랗다야! 꼭 공쥬 다리처럼 기다라네"^^
"호호 나의 다리가 저 늘씬 낙지다리 같다궁? 말 되넹~ 근데 해남 낙지가 원래 뻘낙지, 세발낙지라멩?"
지금은 육지로 변하여 사라졌지만 조각배를 흔히 볼 수 있었을 때, 목포와 지척인 산이면은 물론 해남읍과 가까운 마산면 연구에서도, 아니 행정구역상 해남읍에 속하는 내사리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서 갯것들을 잡아서 해남 장날에 팔러들 나오곤 했었다.
얼마나 많이 산 낙지가 잡혔냐 하면은 해남 시발낙지(세발낙지)가 목포로 건너가 목포 세발낙지로 둔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런가 몰랑^^~~
예전에 바다를 막지만 않았던들, 땅끝 해남은 현재 더욱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 날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남의 일부 연안은 드넓은 간척지로 변모했어도, 아직 뻘 바닷가는 많이 남아 있고, 해남의 바다는 해산물로 여전히 풍요롭다.
"왕할머니는 해남 장날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실까나?"
"어젯밤에 하늘나라에 가서 왕 할머니 뵙고 왔는뎅~ 만난 것이 하도 많아서, 살이가 살아있네 하시면서~지금 으쌰으샤 다이어트하시는 중야!^^ 히히~
여쭤 봤는데 잡수고 싶으신 거 읍디얌. 해남 장날에 재미난 구경 마아니 하고, 우리나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사 먹으랭~"^^
공쥬와 삼식이가 그렇게 재잘거리면서, 안동리를 벗어나, 해남 우시장터인 배드리에 당도한다.
배드리는 수십 년 전에 방앗간이 있었는데 수양버들에 늙은 수말이 매어져 있었고, 근처에는 작은 점빵이 있었는데, 꽃피네올리브며 그 친구들이 어머니 몰래 쌀을 퍼다가 여기 가게에 와서 돈 사거나, 귀하디 귀한 삼양라면 이런 것으로 바꿔 먹었다.
"빅 뉘우스! 꽃피네올리브님이 쌀 몰래 퍼다가 라면 바꿔 먹었던 것을 왕할머니께서 다 알고 계셨드레욤! 알고 계셨드레욤!"
그렇다. 꽃피네올리브 어머니뿐만 아니라, 동네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큰 놈들은 창고에서 가마니 채로, 작은 녀석들은 뒤주에서 쌀을 몰래몰래 퍼 날라서, 장터에서 서커스 공연도 보고, 라면도 사다 몰래 끓여 먹고, 말로만 듣던 서울로, 서울로 가출할 때 노잣돈으로 쓴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셨던 것이다.
그 사연 많은 배드리를 지나, 고도사거리 바로 못 미처에 다다르니 '새 거나 다름없는'^^~ 중고 공구 장터가 있다.
"멀쩡한 중고 공구 내다 파는 사람도 있남?"
"맞아! 여긴 공구를 파는 사람보다도 살 사람이 많을 거야!"
"농부가 연장 읍시 오또케 농살 지엉?"
"그르티?!"
해남원예센터, 그리고 그 옆 호남천막사 앞은 꽃피네올리브의 애마! 삼천리 생활자전거의 전용주차장이다.
배꼽인사의 달인 공쥬!
"안냐세욤!~"
청양고추 품절! 모종들을 거의 다 팔고 조금 남은 모양이다.
길 거너 라미제과, 땅끝안심포크 옆 인도를 점령한 테프 파는 아자씨도, 고무신을 파는 아주머니도 개시 전으로 아직 첫 손님이 없는 것 같다.
꽃피네 어머니가 늘 깨끗이 닦으시던 아버지의 힌 고무신이 여기에 있다. 그 시절에는 명품 신발이었다! 어린이들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힌 고무신은 고급 신발로 어른들이 신는 신발이었다.
애정 하는 고도리 비타민마트! 이 슈퍼는 매일시장의 남일슈퍼처럼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데, 꽃피네올리브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이 착한 가게 코너를 돌면,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장이 서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우왕! 고추나무 바랑!"
"이야! 하늘만큼 땅만큼 많다아!~"
"고추가 나무야? 쌀나무처럼?"
"나무던 머던, 많이만 열리면 나무라고 하눈고얌!"
"그릉감?"
오른편 한국병원 인근에는 묘목과 뻥티기, 닭전이 들어섰는데 '길거리에 임자가 오딘뇽? 먼저 펴는 사람이 임자지!' 라고 하는 듯 전동차를 끌고 요구르트를 파는 아주머니도 해남장에 합류한다.
"앗! 저 것은?!"
전국의 시골 장날이면 어디에서 볼 수 있는 명물, 뻥이요~! 뻥! 뻥튀기다!
강냉이도 넣고, 쌀도 한 줌 넣고, 설날 때 남은 떡국 떡도 집어넣고~ 자! 돌리고 돌려!~
고무신 신고, 힌 저고리 입었던 옛날,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이 "기구하고 박복해라. 서방복 읍는 년은 자식 복도 읍다더니, 서울 가서 돈 벌어 온다던 자식 넘들한테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자 없으니, 이 넘의 기구한 팔자, 저 뺑뺑이 속에다 넣고 사정읍시 돌레 삐리" 했을 법한, 오늘도 해남 장날에 잘도 돌아가는 저 뺑돌이~
"귀 막어라. 눈 감으면 뻥튀기 안 준다!"
"하나" "두울" "세엣!" 뻥!~
"공쥬 너 눈 감았지?"
"아아뇽! 눈까풀만 감고, 눈은 속에서 뜨고 있었시유"
"공쥬가 대답해야지 삼식이 네가 왜 대신 대답하는 거냐?" 하하
옛다! 뻥 먹어라! 그 옛날 왕 할머니 뻥튀기다!~
"에구 냄시야! 코 막아! 난 닭이가 시로!"
"토 나올 것 같으다"
"삼식이 너 세 밤 안 씻은 발꼬랑 내 보다 더 심하Day!"
"안 되겠다. 도망가자!"
왕 할머니 닭장을 떡국에 넣어 먹으면 맛있어 환장하겠지B? 왕 할머니께서는 이런 냄새 맡으시며 닭 잡아 닭장을 만드셨던 게다. 그래도 오늘 장날엔 달구새끼 냄시가 덜 한 편이네. 끈적거리는 여름 장날에 다시 와 보더라고! 아주 죽여준다니깐!^^
오리며 닭, 꿩닭을 파는 닭전의 역한 냄새는 질색이다. 장구경이고 머고 우웩! 이닷! 하며
다시는 설날 떡국에 닭장, 꿩닭장 안 넣어 먹겠다고 맹세하면서, 녀석들이 닭전의 괴이한 냄새를 피해, 냅다 줄행랑을 친 곳은 향긋한 새 옷 냄새가 펄펄 나는 옷전이다.
"우멩! 코가 뻥~ 뚤리삐리넹! 이 새 옷 냄새!"
무지개 파라솔이며 청백의 산뜻한 몽고텐트 안에는 새 옷들이 한가득이다.
옛날 때꼽자국 찰찰 흐르던 시골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설과 추석이 돌아오면, 대목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장보따리에는 7 남매의 새 신과 새 옷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골 아이들은 일 년에 딱 두 번 새 옷과, 새 신을 신을 수 있었다.
새 신이라고 해 봤자, 꼴라당 검정 고무신, 새 옷이라고 해 봤자, 며칠만 입어도 무릎 부분이 튀어나오는 쫄쫄이 바지에 라운드넥 정도가 아니었던가? 두꺼운 잠바는 있는 집 도련님이 아니면 어디 구경이나 할 수 있었던가?
장날 패션은 보통 5천 원, 만원, 만 5천 원 이런 식이다. 다들 부담 없이 사 입는데, 이런 시골에서는 누구 하나 명품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옷값, 신발값 등 치장하는데 돈이 안 들어가 참 좋다.
5천 원짜리 안에 들어가나, 수십만 원짜리 옷 안에 들어가나 편안하면 된 것 아닌가 베?^^
옷전을 지나면 넓은 주차장 근처에는 해남장의 백미인 어물전이 선다.
"공쥬야~ 저거 바! 삐뚤이 무쟈 크다아! 세상에나 이루케 큰 삐뚤이는 첨 바!"
"바부야! 저건 삐뚤이가 아니고 고동이야! 글구 삐뚤이가 모냥? 다슬기라고 해야징!"
"아냐 저건 왕 삐뚤이가 틀림읍서!"
"고동이래두!"
"삐뚤이라니깐!"
공쥬와 삼식이가 고동이네, 삐뚤이네 옥신각신 입방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국산 소라~ 껍질이 선명한 것이 무척 건강해 보인다.
어어! 저 것은 냉동새우~ 이제 해동할 모양이다. 녹이면 오른쪽처럼, 우리가 평소에 보는 어물전의 싱싱한 큰 새우로 변신한다.
"이야 3개만 먹으면 배 뽈록이 되겠다~"는 왕새우 옆에는 가지가지 즉석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녀석들 상상력 하나는 기발하게 살아 있네! 솰아 있어!
"삼띡아! 제사상이닷!
"어? 그르게! 인사드리자!"
"왕 할버지, 할무니 안냐세욤!"^^
제사상의 감초는 병치! 병어가 차려져 있고 큰 바닷 고동인 소라도 "왕 할무니 잡수고 가실 거야"라고 굳은 믿음을 주고 있고, 시커먼 우럭이며, 매운탕의 왕자 볼락! 쏠뱅이도 있고, 커다란 도미도 가지런하여 마치 잘 차려진 제사상처럼 보인다.
녀석들아! 제사상 차리기 전에, 미리 돈 치르고 물건부터 사야지, 남의 물건으로 상 차리는 심보가 어디 있느냐! ㅋㅋ
"5천 원에!", "6천 원 주시라니까요!" 옥신각신 에누리 실랑이 끝에 싸장님 승! 했던 문제의 해남 세발낙지~
"이야! 머리는 쬐그만데 다리는 공쥬 다리다야~"
"무슨 낙지다리가 저르케 길으?"
"이게 말로만 듣던 진짜 세발낙지라는 거얌?"
이런 구경꾼들의 입담 속에 손님이 항복하고 에누리 없이 마리당 6천 원씩을 지불한 세발낙지는 한눈에 봐도 다리가 무척이나 길어 보인다. 쫙쫙 훑어 설라무렝, 우물우물~ 그리고 된장에 매운 고추나 마늘 한 조각했으면! 조동아리 입님이 호강하시겠드아!~
"앗! 삼식이닷! 삼식이 오징어닷!"
"우 씨~ 내가 왜 오징어얌?"
오징어는 왜 머리에 다리가 있는 것일까? 삼식이 오징어 전설
옛날 옛적에 일은 안 하고 날이면 날마다, 동네방네 싸돌아 다니는 삼식이가 있었는뎅~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이 녀석 하는 짓이 하도 가관이라 혼내주려고 다리를 떼어다 머리에 붙이는 요술을 하나님께서 부렸는뎅~
"앗 숭구리당당 숭당당! 아둥그리 둥당둥당 둥당당! 변해라 얍!" ~
아 글쎙!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지고 간다'라고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요런 한심한 삼식이는 배로 엉금엉금 기어가 바닷물 속으로 풍덩~ 머리에 붙은 다리로 낑낑대며 헤엄치고 놀러 다녔드래여. 그래서 보다 못한 용왕님이 짠! 하고 나타나
"네가 뭍에서 쫒겨 난 삼식이렸다!"
"뉘옝"
"내 네가 가여워 다리를 몇 개 더 하사하겠노라. 수리수리 마하수리! 아리아리 아둥구리 아당당!"
용왕님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자 머리에 붙은 두 개의 긴 다리 옆에 짧은 8개의 다리들이 짜잔! 생겨 났다 눈 고야~ 용왕님은 그 모습을 대단히 흡족하게 바라보시며 삼식이 대신 오징어라는 이름까지도 지어줬대나!
"정마알?"
"속고만 살았냥!"^^
낄낄~ 우하하하~
녀석들아~ 그것들은 삼식이 오징어가 아닌 갑오징어란다.
어렸을 적 갑오징어 철이 돌아오면, 장에서 갑오징어를 사 오셨던 어머니, 갑옷이라고도 하고, 갑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에 뼈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혹자들의 잘못으로 뼈라고 불리는 하얀 방패 모양의 물체가 물 위에 둥둥~
이 힌 방패 위에 성냥개비 같은 가느다란 막대기를 콕 찌르고, 대야 속 물 위에 띄우면, 시커먼 먹물이 흐물흐물 피어오르고, 갑오징어 뱃속에서 나온 돛단배가 아련히 떠 다닌다.
"떼깔이가 좋드아~"
"어쩜 은빛깔이 저렇게 싱싱하게 보이냥!"
"제주도 갈치야? 목포 갈치야?"
"목포에서 가져왔대. 그래서 목포 갈치라고 하는가 봐"
하기야 제사 닥친 이들만 사지 누가 이런 대물 병어를 평소에 구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긴급재난금으로 구호자금을 쏟아붓는 이 시국에, 그것도 이런 시골에서.
"목포 갈치면 어떻고, 병어면 또 어띠얌? 맛만 있으면 되눈고지? 안그랭? 삼식아~"
"맞아. 난 그릉거 몰라. 양만 많으면 쵝오얌! 다른데 또 구경하자"
"아주머닝~ 저 빨간 고기는 모래욤?"
"저건 볼락, 쏠뱅이라고 하는D 매운탕 끊일 땐, 이 것보단 맛있는 건 없어요"
"그렇게나 맛있어욤?"
"둘이 먹다 한 명이 죽어도 모른다니깐요!"
"에잉 그런 일이 어딨쪄욤?"
"우럭 매운탕이 맛있다 맛있다 해도, 이 쏠뱅이 매운탕 한번 잡수면 우럭 같은 거 안 자신다니깐요! 그렇게 못 믿으면 한 마리에 만원에 줄 테니까 한 번 잡숴 바요!"
전국의 전통 오일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이 해남 장날에도 벌어진다.
봄철 보리숭어가 파란 포장 위에서 '에구 이젠 나 죽었다!' 하면서 펄떡펄떡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저거 얼마 나요?"
"한 마리에 5천 원! 자! 떨이로 12마리 전부에 만 오천 원에 드릴게요"
소매로 팔면 총 6만 원어치를 몽땅해서 만 오천 원이라니 지갑이 손이 갈 뻔 했드아! ㅋㅋ
퍼뜩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지?' 하는 생각이 스치자 다들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듯한 눈치다.
식당이나 대식구인 사람들에겐 딱인데 등 뒤에서 "숭어 다 싸 주세요" 하는 약간 서투른 한국말 소리가 들린다. 건장한 우즈베키스탄 외국노동자이다. 그들은 대개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데 이런 떨이는 완전 횡재인 것이다.
"몇 마리나 드려요?" 다 싸 달라는 것이 의심쩍은지 다시 확인하는 숭어 쥔장! 이 번에도 다 싸 달라는 대답은 한결같다. 거래 성사! 장사 끝!
왜 보리숭어냐구? 보리가 익어 갈 때 나오니깐 보리숭어지B!
삶아서 볶아 먹으면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작은 화랑게가 통 속에서 기어 다니고, 세 마리의 죽상어는 커다란 쟁반 위에서 시한부 삶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해남 장날의 관객들을 위하여 퍼덕퍼덕~ 혼신의 춤을 춘다.
잘 해금되어 보이는 꼬막과 바지락들이 입을 벌리고 그 옆 산란기 철에는 먹으면 안 좋다는 철 지난 석화가 눈에 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즐겨 먹었다는, 몸에 좋은 강장제인 석화라고 하는 굴은 5월부터 7월까지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어? 여기도 벌어졌넹! 한참을 흥정하는 두 사람, 손님은 만져보고, 눌러보고 더 깎아달라고 한다.
"에잉 눌러보니까 쑥 들어가는 것이 죽은 지 한참 된 것 같네유"
"아이고 무슨 말씀을! 여기 살아 있는 전복 중에서 죽은 것만 방금 건져 놨다니까요"
"3만 원은 비싸니께 2만 원에 해 조요"~
"산 것이 10만 원인데, 3만 원이면 거저 라니까요"
"아무리 전복이라도 비싸네요.
여기는 갑오징어 죽은 것, 씨알이 엄청 크다. 여기서도 또 마리당 만 오천 원이라는데도 한사코 만원에 달라고 흥정을 하고 있다.
공쥬와 삼식이의 해남장날 나들이, 이렇듯 전통 오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겨운 "에누리 없는 장사 오딘뇽?" 하며 물건 값을 놓고 곳곳에서 밀고 당기는 에누리 흥정이 벌어진다. 그래서 장구경은 항상 즐겁다.
오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사진 맘대로 찍으라는 해남 고도리 전통시장 오일장터 내의 안평수산 사장님!
"공쥬야! 여기는 물고기들이 초상권 침해라고 데모하지 않는대"
"저기 바닷장어 녀석들은 허락읍시 자기들 사진 찍는다고 얼마나 나대는지 사진을 못 찍었어! 세상에 물고기들이 초상권 침해라고 우기니, 살다 살다 저릉 건 세상 말세얌"^^
세상 말세? 하하 너희들 둘이 합해서 몇 살인뎅?
"아홉 짤이욤!"
"열여덟 짤이욤!"
"요 녀석은 장대라는 것이고 보이죠? 이 가시? 등뼈 지느러미에 붙은 거? 찔리면 눈물 팍팍 엄청 아픕니다. 중간 것은 서대로 매운탕 끓이면, 여기서는 서더리탕이라고 아주 맛있어요. 저 끝에 것은 막대라고 맛이 끝내 줍니다!"
짠짜라 짠짠! 짜자자자 잔 짠짠!
장대, 서대, 막대. 이름도 겡기한 대자 돌림 3 총사 옆에는 큰 도미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공쥬와 삼식이, 녀석들은 각기 제 눈높이에서 또 우김질 하기에 바쁘다.
"이야 붕어다! 진짜 큰 붕어다"
"아니야 함포야~ 잉어얌. 어? 이 잉어는 이마가 되게 툭 튀어나왔네. 꼭 누구 대글팍 같디야 홍홍!"
"누구 대글팍처럼 보이눈뎅?"
"누군 누구야! 바로 너 지비! 누가 더 센지, 박치기 시합함 해 바랑. 눈깔사탕 1개 하고 빼빼롱 2개 줄게"^^
꽃게들이 살아서 비좁은 대야 속에서 아등바등 거품을 내뿜고, 그 옆에는 죽은 암게들이 "나, 방금까지도 사랑받던 암게였다!"라고 하면서 암컷임을 증명하듯 넓적한 배딱지를 드러내 보이며 벌러덩 드러누워 있다.
고놈들 참 실하네!
살아 기어 다니는 큰 자연산 전복의 등딱지에 붙은 따개비의 흔적들이 살아온 긴 세월을 말해 주고, 움틀꿈틀 화난듯한 몸짓을 하는 해삼의 돌기들이 기괴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해남 오일장터 내, 안평수산 사장님~
커다란 농어를 뒤집으며 손님들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이맘때, 모내기할 때 즈음에, 보리 숭어회나 농어회 끝내주지 끝내줘! 숭어의 야들야들하고 쫀득쫀득한 식감과, 비린내가 전혀 없고 살살 녹는 농어의 맛은 말로 백날 설명하면 무엇하랴. 해남장날이 서면 바로 맛보면 될 것을. 아니 그러한가?
'공쥬와 삼식이' 두 녀석들이 얼룩말 물고기라며 신기해하는 검은 줄무늬를 자랑하는 줄돔과 '어라, 연 물고기도 있넹' 하면서 가리키는 간재미~ 가자미들이 파닥거린다. 그러고 보니 꼭 얼룩말 무늬며 기다란 꼬리를 단 연 같다. 얼룩말 물고기, 연 물고기!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은 이렇게 다채롭다.
흥겨운 어물전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국화빵이며, 딸기며 포도며 각종 수입과일과 국내 생산 과일들을 파는 곳이 나온다. 그 반대편에서는 농사일할 때 여자들이 쓰는 채양 달린 모자며, 구운 호박씨, 아몬드며 찐 옥수수, 냉커피며 식혜 등 주전부리를 판다.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무엇을 파는가 궁금하여 쫄랑쫄랑 발걸음을 옮기니, 검정깨를 넣어 만든 흑임자 두부와 콩 두부를 파는 아저씨 좌판에서 웅성거린다.
한 모에 3천 원, 두 모에 5천 원! 두부 한 번 어마 무지하게 크다. 특대 부두인데 맛있다고 맛 베기로 한 번 드셔 보란다.
거래 성사! 5천 원 낙찰!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집에서 만든 손두부를 맛보기란 여간 흔치 않다. 알알이 톡톡 씹히는 흑임자 두부의 검정깨들, "바로 이거야 금리댁네 옛날 콩 두부 맛이얌!" 고소한 콩 두부 냄새가 잊고 있었던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을 들추어낸다.
몇 해 전 간경화로 세상을 달리 한 춘배하고 어렸을 적, 금리댁네 두부를 훔쳐 먹다가 들켜서 아버지께 D지게 맞았던 별로 고상하지 못 한 기억 말이다.
노가리며 바지락 말린 것, 건새우 파는 맵씨 좋은 젊은 아주머니를 지나서 야구공 보다 더 큰 왕 양파를 파는 채소전에 당도한다.
바로 옆에는 싸구려 분홍색 속옷, 공주 녀석 표현을 빌리자면 일명 '할머니 빤쮸'나 화장품 등 잡화며,
왕 족발이며, 빨갛게 단풍 물을 들인 맛깔난 반찬들을 팔고 있다.
해남은 넓은 농토가 있는 지역으로 갖가지 채소를 농사짓는다. 더군다나 지금은 5월 하순, 모내기에 마늘, 양파 캐기에 한창 바쁘다.
농번기라서 오늘 해남 장날은 평소보다 한산한 편이다. 그래도 인근의 강진, 완도, 진도, 장흥장 등에 비하면 규모가 아주 크다.
심고 남은 고구마 순을 팔려고, 팔뚝만 한 무를 팔려고, 갓 캐낸 햇마늘을 팔려고 앉았지만 어물전의 맛나 보이는 생선에만 애정을 줄 뿐, 채소전을 찾는 발길들이 뜸하다.
축 늘어진 고구마순과 외로운 말총머리를 한 햇마늘을 지나치면 해남장날에 인기 있는 반찬 전이 나온다. 반찬전이라고 해봤자 한 두 군데이지만 인기가 많다.
"야아! 빨갛다!"
"먹음, 맴맴~ 혀가 다 얼얼할 것 같아"
"공쥬 너 좋아하눈 양파김치도 보인다!"
"삼식이, 속창아지 밴댕이 젓갈도 있넹! 속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속창아지라고 한D얌" 호호
"우씨 만만한 게 항상 나야. 내가 머 동네 북이냥! 모냥!"
"어쭈구리! 이게 오냐오냐 해 줬더니 이 공쥬에게 기어오른다 이거지?! 너 저 쪽 구석에 손들고 '공쥬의 껌딱지 맹세'를 큰 소리로 다섯 번 외쳐 바!"
다 팔리고 이제 반 포기 남은 배추 포기김치가 오늘 장사가 성공적이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잘 담근 고추김치도 '나 잡숴 바라' 하면서 삼식이의 발목을 잡는데, '매운 건 공쥬스탈이 아냐' 하면서 고추김치를 좋아하는 삼식이는 애써 도리질을 한다.
우멩 단풍 들겠네! 가을 행락철도 아닌데, 해남 장날의 젓갈 냄새 풀풀 나는 반찬들, 여기저기에 단풍이 물든다.
"완 투 쓰리!"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니 닭이나 오리를 파는 주인장이 좋게 말해서 바겐세일, 즉 호객하고 있다.
완 투 쓰리가 머냐궁? 1 + 1 닭 파는 기술이지비! 한 마리에 5천 원, 두 마리에 만 원인데, 1마리 껴서 3마리를 단 돈, 만 원에 주겠다는 것이다.
공쥬와 삼식이는 힐끗 서로를 쳐다보면서 무엇인가 눈 대화를 하는데, 아까 고약한 닭전의 냄새를 피해 도망갈 제, 다시는 닭고기 안 먹겠다는 맹세가 생생한데 이 두 녀석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가?
너네들이 프라이드치킨을 안 먹겠다구? 입 벌리 바! 아~ 하고, 하하~ 속이가 다 보인다.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 주방용품을 파는 곳, 씨앗을 파는 곳도 보인다.
오! 칼국수 면발이다. 여기도 에누리는 있다. 1개에 천 원, 6개에 5천 원이다. 이 것들을 사다가 일단은 면발을 찬물에 헹군 다음, 끓는 물에 면발을 익히고 칼국수 육수나, 콩물을 넣으면 야들야들한 칼국수나 냉콩국수가 된다.
"해남사랑 상품권 드릴게요. 면발 5천 원, 한 개 껴서 6개 주시는 거죠?"
"앗싸아~^^ 삼식이는 신난다! 오늘 칼국수 먹는 Day!"
"여깄어요. 거스름돈 5천 원"
"콩물국수 해 먹게 콩물도 한병 주세욤"^^
그리하여 만 원권 해남사랑 상품권으로 면발과 콩물을 사들고서 발걸음도 가볍게 룰루랄라~
공쥬와 삼식이의 해남장날, 전통 오일장 나들이하는 중에 숱하게 보았던 "에누리 없는 장사 오딘뇽?" 하면서, 밀고 당기는 물건 깎는 노력이 보상되는 순간이다.
후루룩 쩍쩝! 호로록 냠냠~ 공쥬와 삼식이의 묘한 이중창과 함께 해남장날이 저물어 간다.
꽃피네올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