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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피네올리브 Aug 23. 2020

숲 속 요정들의 아침 식사

올리브나무의 요정들

어젯밤, 도시락 밥을 미리 싸 놓고 자리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5시.

풋고추 3개, 삶은 달걀 2개, 갈치젓 반 스푼, 고추장 반 스푼, 올리브유 엑스트라버진을 가미한 마라소스로 볶은 김치를 챙겨서 도시락을 싸 놓았었다. 오늘 올리브 농원에서의 아침식사는 도시락을 싸 가서, 한참 동안 올리브 나무 지주대 작업 일을 한 후, 8시 반경 먹을 요량이었다.

삼천리 자전거 점에서 산 애마를 타고 설라무렝, 헉헉대며 어둑어둑한 말뫼봉을 넘으니 날이 어느정도 밝았다. 갑자기 합창이 시작되었다. 매미며 온갖 풀벌레 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내고 있었다.  이 때, 장끼가 쪼로로록 풀숲으로 기어들고, 여기저기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고라니가 인기척에 놀라 4미터의 둑을 넘어 손살같이 숲으로  내달렸다.


어렸을 적, 어둑어둑한 초저녁에 심부름을 가야만 했을 때, 골목길을 벗어나면 정말 무서웠다. 자꾸만 누가 따라오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근지러워 뒤를 쉴 새 없이 뒤돌아 보곤 하였다. 코불이 소년의 기억 속에 '어둠은 무섭다'는 것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송장굴의 송장들은 다 썩었어도 절대로 귀신이 될 수 없다는 것과, 망령굴의 망령들은 이렇게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언제 땅 속에 들어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 이골이 난 지금, 말뫼봉의 으슥한 아침 어둠은 무서움보다는 오히려 친근하였다. 지나온 세월 동안, 자신이 싸질러 놓은 오물들을 숨겨 주고, 앞으로 영면에 들 억겁의 세월 동안 이불이 되어 줄 어둠이 이제는 좋은 것이다.


이 이른 아침, 산길에 움직이는 사람은 꽃피네올리브 밖에 없다. 끈적이는 얼굴에 붙는 깔따구들을 피하여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검은 비자림 아래 숲 속의 올리브 농원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지주대를 박고 올리브나무들을 매어 주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해가 뜨고 햇살이 따가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서,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이중창 소리가 들릴 때만이, 맹물에 말아먹는 올리브 농원에서의 조촐한 아침식사가 별미를 자랑하는 일류 레스토랑에서의 어느 만찬보다 비로소 더 맛이 있을 것이다.

혼자 일하기도 심심하고 그래서 하늘에 있는 우리 공쥬와 그의 영원한 딸랑이 삼식이를 호출하여 산속 꽃피네 올리브농원에서의 적막감을 덜고자 하였다. 공쥬와 삼식이는 꽃피네올리브만이 볼 수 있고, 대화를 할 수는 있는, 올리브나무가 하늘하늘 평화로운 이 숲 속을 노니는 수많은 요정들 중 하나이다.

"공쥬야 이리 내려와서 말동무라도 하거라"
"잠만요~ 삼식이 깨워서 같이 갈게욤~^^"


"오늘은 무슨 일이를 하시는 거예유~"
"오 삼식이구나. 지지대를 박고 올리브나무 가지들을 묶어 주는 일이란다"

"그르케 쉬운 일은 새끼손가락으로도 할 수 있구만유~ 새참은 맛있는 거 싸오셨쥬?"
"열심히만 따라다니면, 최고의 아침밥이 될 것이다"

"그르케나 맛이가 있어유?~ 공쥬야! 신나게, 재미나게 마구마구 일도 거들어 드리고, 말동무도 해 드리자"
"오케에~!"


유락쬬에서 만나재나 머래낭~ 그런데 색동 저고리를 입었넹~ㅋㅋ

아이폰 앞으로! 에어팟~ 삐리리릭 피융!

음악 Q~
胡嘉玲 후쟈링~ 쿵짝쿵짝~ 꽃피네올리브가 열렬히 애청하는 대만 가수~ 언제 들어도 목소리 하난 끝내준단 말이야~~

180센치 미터 0.65T 튼튼 올리브나무 지주대

귓구멍 때링 막았쪄?^^

지금부터, 좋았던지 나빴던지 따지지 말고, 애증으로 얼룩진 지난 세월을 사정없이 때려 박아뻔지자!


올리브나무 지지대(지주대)를 때려 박자~ 아니 때려 박을 필요까지도 없다. 힘껏 힘을 줘서 땅 속으로 쑤셔 넣자!

'올 같은 억수장마라도 수심이 진하여 심중에 붙는 불을 다 끌 수는 없겠지만', 올리브나무만이라도 센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묶어 주자.

적당한 올리브나무용 지주대, 지지대

1. 길이 : 180센티 이상
2. 두께 :   0.65T   이상
올리브나무는 아주 빨리 크는 속성수이므로 지지하는 지주대는 될 수 있는 한 길고, 튼튼한 것을 사용하여야 한다.
~꽃피네올리브뎐 중에서~


카만!

선크림~~


이도령이 준 선크림

아무리 시골 바닥에서 뒹군다 해도 선크림은 발라줘야 하는 거 아냠? 이도령이 햇볕에 탄다고 선물한 자외선 차단 선크림을 바르고 돌격!

사방 팔방으로 잘 크는 올리브나무, 작아도 열매는 달고 있다!
올해 3월8일날 심은 녀석인데 머가 급한지 벌써 열매를 달았다~
키가 60센치도 안 되는 녀석이… 애가 애를 밴게 아녀?^^
안개낀 올리브농원

아침 8시 반! 즐거운 아침 식사시간~


"공쥬야! 도시락을 까 보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어라 안 열려? 그렇담 이번엔

"숭구리당당 숭당당 아둥구리 당당 우당탕!"

"아브라카다브라! 진수성찬 열려라 얍!"


오!

찐계란 두 개, 청양고추 3개, 갈치젓 삥아리 눈물만큼, 고추장 딱 한 스푼, 김치볶음 약간, 그리고 얼음물


땅바닥에 그냥 차린 아침 도시락

"우앙"

"속았닷!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다더니 꼴라당 이게 머람요?"
"너네들이 배가 덜 고픈 모양인데 그럼 나 혼자 먹는다??"
"아녜욤! 저희도 같이 먹을게욤!"
"그럼 뚜껑이나 열어 봐"
"근데 숟가락이도, 젓가락이도 없어욤!"

헉! 깜박했다.
어떻게 할래? 굶을래?
"노! 노! 배고파 죽겠떠욤!"

그럼 손으로?
"앙앙 전 공쥬란 말이예욤"
"엉엉 손에서 냄시난단 말이예유~"
그우랭? 그럼 대나무를 꺾어 오너라


오늘의 아침 젓가락 대나무~

근처에 있는 충헌각의 대나무들을 뚤레뚤레 살펴보니, 담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온 대나무 녀석을 발견하였다. '모 나면 정 맞는 겨!' 옛사람들의 말씀들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가위로 톡톡 하니, 짠 하고 젓가락이 만들어졌다. 어띠얌? 이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니얌?

먹을 때만큼은 좀 편하게 먹자. 장화를 벗고선 땅바닥에 그대로 철퍼덕~

여름에는 딴 거 필요없다.  얼음물하고 풋고추가 제일 좋더라~


"삼식아 너 어디가 젤루 단단하냥?"
"그야 단단하기로 세상에서 젤루 유명한 이 돌머리지비!"
"그우랭? 너 저기 큰 바위 하고 박치기해도 이길 자신 있엉?"

삼식이랑 박치기 내기 한다던 짱돌바위

"크으람! 저릉건 째비도 안돼~ 내 머린 천하무적 금강석 똘머리라궁!"
"그으랭? 인정! 이마 함 내밀어 봐"
"??"
"계란 좀 깨 먹게 말이얌!"

장난 삼아 머리에 계란을 탁 치니, 파싹~하고 껍질이 잘도 부서졌다. 돌머리 아직 쓸 만하군!^^

참 잘 삶아졌다. '역시 계란은 15분 팍팍 삶아서 찬물에 퐁당 해줘야 해'~ 언젠가 계란 삶는 팁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을 즐겁게 룰루랄라 하면서 가져온 하얀 가루를 듬뿍 묻혀서!~~


먹고 싶엉? "웅"

줄까? "웅"

그럼, 아~ 아~ 더 입 크게 벌리~ 속 보인닷! ㅋㅋ
메롱~ 안 줘!~ 그대로 입 속으로 쏘옥!

​맛있냐? 어째 인상들이 오만가지 불쾌하고 야릇한 감정을 다 표현하고 그러냐?

우웩  퉤퉤

"삼식이 너 이거 소금 싸 온 거 맞아? 왜 소금 맛이가 짜지는 않고 느끼하냥?"
"우씨 소금 맞대두! 영어로 소금MSG라고 분명 소금통에 써져 있었다구.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한 영어 하지비~"
"에라 이 삼식이! 넌 좀 맞아야D얌! 머 한 영어가 어째고 어째? MSG는 소금이 아니고 화학조미료, 즉 미원이자눙!"




9시, 작업 재개
11시 반, 지지대. 지주대도, 끈도 다 떨어졌다. 햇볕이 뜨겁다. 일단은 집에 가자.


애마 삼천리 생활자전거

삼천리 레스포 자전거~

본체 14만 원에, 그리고 별매 부속품인 바구니며 흙받이, 짐받이, 끈 등 3만 원, 총 17만 원을 들인 애마를 타고 말뫼봉을 헉헉대며 넘었다. 저 멀리 집이닷!.

아침에 땀이 나도록 지지대(지주대) 작업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올리브 농원에서의 맨 밥에 풋고추, 갈치젓의 조촐하다 못해 빈약한 아침식사가 어찌 맛이 있었겠는가? 아니 그러한가?


2020. 7. 7
꽃피네올리브



"왜 반찬이가 이르케 없어욤?"
"만들 줄 몰라서~"
"배달시켜 먹지 그러세욤?"
"이 바부 삼띡아! 여긴 시골이라구! 이른 아침에, 그것도 꼴라당 1그릇 배달해 주는 데가 오딧냐?"
"아침엔 배달도 안 되구, 낮에도 1그릇은 미안해서도 못 시키거나, 1인분 배달을 안 해 주는 데가 많은 모양이구만유~"

"굶을겨? 아님 맨밥이라도 먹을 겨?"
이구동성!
"맨밥이욤!"^^ ㅎㅎ ㅋㅋ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으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눈물, 늘 축축한 베갯머리, 배 고파도 밥이가 넘어가지가 않는구나.
그렇다고 서럽다고 울지 말거라. 내 곧 늙어서, 따라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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