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를 맞으며 올리브나무 아래며, 둑이며, 밭길이며, 놀리고 있는 주위의 땅에, 올리브나무 꽃밭을 노니는 요정들과 호접을 꿈꾸며 오랜 친구인 프랭크가 보내온 소래풀꽃 씨앗을 뿌렸습니다.
"소래풀꽃? 이름 한번 이상야릇 겡기하다야~ 공쥬야 너 소래풀꽃이라는 거 본 적 있어?"
"그우람! 내 나이가 몇 개인뎅~ 반도원에 몰래 들어가 서왕모 천도복숭아 훔쳐먹다가 들켜서 벌서고 있을 때,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니 제갈량이란 아해가 소래풀을 데쳐먹고 있더라"
"오또케 생겼는뎅?"
하늘나라에 사는, 꽃피네올리브의 다정한 요정인 공쥬는 눈깔사탕을 입 안 가득히 물고서 "소래풀꽃 나와랏! 짠!" 하고 보여 주었습니다.
"움맘마 이쁘다~ 오늘 삼식이 눈이가 호강한다야"
꽃피네올리브는 왠지 있어 보이는 보라색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소래풀 꽃씨를 올리브나무 아래 잔뜩 뿌렸습니다. 비단 올리브나무 주위뿐만 아니라 넓은 둑방이며 밭길이며 심지어 군이 관리하는 주차장 근처까지 야생화인 소래풀꽃 씨앗을 파종하였던 것입니다.
"공쥬야 이 이쁜 들꽃이 왜 소래풀꽃이라는 좀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거얌?"
"그거야 소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방. 왜 소래풀 꽃인지~ 삼식아 이거 제갈공명이 어린 순을 먹었다 해서 제갈채라고도 하고, 생김새가 유채와 조금 비슷하다 해서 항간에는 보라유채라고 엉뚱한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고, 꽃 색깔이 제비꽃처럼 보라색이어서 제비꽃냉이라고도 부른디얌"^^
"그럼 유채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거얌?"
"잘 봐봐. 어디 감히 유채 따위가 소래풀꽃 근처에나 올 수 있겠슴?^^"
"희야~ 거참 사람들, 희한한 별명들을 갖다 붙이넹"
그렇습니다. 소래풀은 그저 산에, 들에 피는 소래풀꽃이라고 불리고 싶답니다. 소래풀의 과학적 분류는 소래풀속, 소래풀로서 제비꽃이나 유채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이른 봄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강원도의 늦봄까지 한반도를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유채와 달리, 보라색으로 치장하고 싶은 소래풀꽃, 야생화라고 해도 제비꽃처럼 한 떨기가 아닌 군락을 이루며,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을 연출하는 소래풀꽃은 내년 봄에 꽃피네올리브 농원, 올리브나무의 하얀 꽃과 잘 어우러질 것입니다.
꽃피네올리브는 오랜 절친에게 부탁하여 올리브나무 근처에 뿌릴 소래풀 꽃 씨앗 50킬로를 들여왔습니다. 씨앗의 모양은 타원 같기도 하고,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을 도는 소행성처럼 울퉁불퉁 괴상하게 생긴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삼식아 이거 좀 봐방^^"
"이게 공쥬 네가 수천 년 전에 봤다는 제갈공명이가 먹었다는 재갈채! 소래풀꽃 씨앗이구낭! 히히 요건 이쁜 계란~ 공쥬같구~"
"하하 요건 울퉁불퉁 못 생긴 삼식이 같궁"
"엄청 많구낭. 우리 함 세어볼까?"
이로부터 한 시간 , 두 시간~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고, 고운 눈썹달이 빵빵달이 되고 다시 공쥬달이 되기를 반복하였는데, 하늘나라에서 온 이 요정들은 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일만일천일백일십일… 천만천백천십이…"
"공쥬야 좀 슀따 하자" 힐끗~ 삼식이가 공주를 곁눈질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럴까 좀만 쉬었다 하자. 인간세상에 춤추는 황진이라고 인터넷 검색해 보면 나오는뎅 차돌백이 된장찌개 레시피가 있D얌. 내가 그거 보고 맛있는 차돌박이 된장찌개 해 줄게"
이리 이리해서 두 요정은 신나게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해남 옥천농협의 내노라는 한눈에 반한 쌀인가 뿅 간 쌀인가로 밥을 해서 맛있게도 냠냠 짭짭~ 우걱우걱 배불리 잘 먹었답니다.
"아후 졸레~"
"나두 넘 쫄레~ 눈이가 마구 감기삐링. 한 숨 때리고 일어나서 다시 셀까나?"
"그럴까?" "그러자!"
"디리렁 콜콜콜"~ 공쥬와 삼식이의 꿈속에서는 수많은 호접이 날아다니고, 아롱다롱드리 현기증 나는 아지랑이며, 힌곰나라의 오로라 같은 이상한 나라의 아름다운 무지개들이 춤을 추었습니다.
수 시간 후, 움냐움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녀석들은 다시 소래풀꽃 종자를 세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르는 법!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센 숫자를 그만 까먹어 버린 것입니다.
"공쥬야 우리 몇까지 세었더랑?"
"일천만 일백 일십… 오마이갓! 까먹었다!"
"오또카징?"
"헐~ 일났넹. 그럼 첨부터 다시 세야 하눈고얌?"
우아앙~ 완전 핵 망했다!
"난 못행. 차라리 날 쥑여!"
"앙앙 공쥬 살리 주세욤!"
"엉엉 잘못 했시유~ 삼식이도 좀 살리도욤"
녀석들아! 호들갑 떨지 말아라. 먼저 1그램씩 열 번, 몇 개씩인지 세어보고 평균해서 1그램에 몇 개인지 알아보거라.
"320개욤!"
"그우랭? 1 킬로면 32만 개구나. 십 킬로면 320만 개, 총 50킬로이니 대략 1천6백만 개이구나"
꼬로록~!
꽃피네올리브의 간편한 계산방식에 녀석들은 그만 뽀로로롱 뽀골뽀골 꼴가닥 하고 기절해 버렸습니다.
"자아 이제 씨를 뿌리자" 천 6백만 립의 씨앗을 파종하는 것입니다. 먼저 마사토 5-10의 부피에 씨앗 1의 부피비율로 잘 섞습니다. 태국 인부들이 올리브나무 농장에 뿌릴 소래풀꽃 씨앗을 마사토와 함께 잘 섞었습니다.
머 별거 있나요? 골고루 뿌려줍니다. 이게 말은 참 쉽습니다. 어설픈 농부는 한 곳에, 한꺼번에 왕창 뿌리기도 합니다.
"신난다! 마구마구 삐리뻔지자~"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부족하면 너 뒈진 Day~"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어느 순간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씨앗 1킬로당 1백 평, 1 헥터 3천 평 30킬로! 물론 교과서대로 한다면 헥터당 약 45-60킬로를 뿌려야 한다고 하지만 꽃피네올리브는 헥터 3천 평당(1만 m 2) 30킬로를 뿌렸습니다. 그러니까 5천 평의 올리브 농장 및 그 주위에, 총 50킬로를 파종하였습니다.
씨 뿌리기까지 순탄했냐고요?
천만에요!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도 길고 비도 많이 내렸구마니랑랑. 꽃피네올리브님은 올 같은 억수장마는 살다 살다 처음 본다고 하셨어욤!"
"그거 뿐이게욤. 태풍이가 오기 시작했떠욤. 8호 바비가 왼쪽 뺨을, 9호 마이삭이 오른쪽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갔는데욤, 맞은 두 뺨이 얼얼한데, 또다시 10호 왕태풍이 덮쳤는데, 바다의 신이라나 머래나 해신이라는 10호 태풍 하이선은…
"부산 앞바다를 스쳐지나, 동해상으로 빠진다는 기상청의 빗나간 예보에, 그냥 업퍼컷 냅다 한방 맞아서 쌍코피가 났데욤"
터져 나오는 볼멘 이구동성!
"기상청은 중계청! 거짓말쟁이 뻥쟁이 구라청! 말미잘, 해삼 똥꼬청이래욤!"
긴긴 장마 후, 10일 사이에 무려 3번의 태풍이 지나가고도, 하루가 멀다 않고 비가 내렸습니다. 밭을 갈려고 하면 비가 내리고, 잠시 개었다가 또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하였는데, 9월 11-12일 새벽에 30밀리 정도의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더 이상 하늘만 쳐다보다가는 꽃씨 뿌리는 파종시기를 놓칠 것 같아 9월 12일 아침, 동네 광택형께 로터리를 쳐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밭에 물기가 너무 많아 트렉터로도 로터리를 치기 힘들었습니다. 군데군데 뻘밭이 된 곳들은 포기하고 대충 짓이겨 놓았습니다.
그날 오후, 찬수형 포크레인 콜!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트랙터 대신 포크레인 중장비로 고랑을 파고 두둑을 만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은 포크레인을 코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힘센 코쟁이 코끼리가 긴 코로 멋지게 큼직큼직 꽃밭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월 13일 오전, 겨우 파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파종 후에는 갈퀴로 긁어줘야 싹이 잘 납니다. 오후에 끝나기 한 시간 전쯤부터 또 보슬비가 내렸습니다. 파종하자마자 이런 보슬비가 내리다니 새싹이 정말 잘 트게 생겼습니다. 비를 쫄딱 맞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너무 기뻤습니다.
비에 젖은 올리브나무들도 반짝반짝 영롱하여 신비스러웠습니다.
2020. 9. 13일,
올리브나무 꽃밭에서 뛰어노는 요정들을 꿈꾸며 소래풀꽃 씨앗을 뿌렸습니다.
"공쥬야 꽃피네올리브님은 왜 돈 들여서 굳이 꽃밭을 만들지?"
"내년 봄에 사람들이나 우리들이 놀러 와서 예쁜 사진 많이들 찍으라고, 그리고 유채 대신으로~
해년마다 갈아엎어서 군 전체가 미친 짓거리 하는 유채보다 낫잖아?"
"그릉 거창한 거 말고"
"인생이 띰띰해서!"
"그릉거 말고 좀 진지하게 말 좀 해조!"
"음~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