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Ryuichi Sakamoto | Opus)
개봉 중인 이 영화를 지금까지 3번 보았다. 처음 두 번은 개봉일 조조와 오후 회차에, 나머지 한 번은 1주 후에. 이 음악가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한 팬 상당수는 나처럼 개봉 첫 주에 보았으리라. 그래서인지 개봉 당일엔 상영관 안에서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렸다. 기력이 생생하다면 리듬감 있게 연주했을 만한 대표곡들을 힘주고 치지 못할 때마다 팬들은 슬펐으리라.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글귀를 떠올리며.
피아노를 칠 때는 생각보다 많은 근력이 필요하다. 미세한 셈여림과 리듬 변화를 유연하게 표현하기 위해 몸에도 약간은 긴장이 베어야 한다. 다만 몸뚱이를 마비시키는 딱딱한 긴장은 아니다. 언제든 부드럽게 이완할 준비가 된 유연한 활력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때와는 또다른 섬세한 근력이 몸에 베인다. 섬세한 탄성을 가진 고무줄 같은 복원력을 가진 긴장감은 음악가가 각성 상태로 자신의 연주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큰 화면에서 가녀린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오랜 세월 병마와 싸웠기 때문일까. 연주하기엔 근육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마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여전하다. 여명을 조금 남겨둔 과거 속에서 그는 온전히 현재를 살고 있었다. 연주 중 간간히 미소를 띨 땐 그가 지금 우리 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가느다란 고목나무 가지처럼 앙상해진 손가락으로 그는 노련하게 연주를 이끌어간다. 아니, 연주를 해낸다기보다는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를 음미하는 듯 보였다. 특히 생애 후반기에 발매한 《Async》, 《12》 앨범 수록곡들을 연주할 때는 뭐랄까, 그는 소리가 일으키는 공명을 느끼려는 모습처럼도 보였다. 이렇게 말해봐야 그의 마음속을 알 길은 없다. 그저 뜨내기 관객으로서 뜬구름 잡듯 상상해 볼 뿐.
흑백 화면으로 연출해서 그런지 관객은 오롯이 그와 피아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쨍하니 악보와 피아노를 비추는 불빛 아래에서 마치 보름달처럼 그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소리를 일으키고, 느끼고, 호흡하고, 멈추고, 또다시 소리들을 겹겹이 쌓아 공명하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어떤 노래는 나사못과 쇠 집게를 피아노에 꽂으니 마치 일본 전통악기 샤미셴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그가 직접 선택한 레퍼토리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덧 공연은 마지막을 향해 다가간다.
〈Happy End〉가 흘러나올 즈음 큰 화면은 서서히 밝아진다. 어둠이 겉어지며 쨍하니 연주 공간이 드러난다. 밝아지는 배경을 뒤로 하고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신곡 〈Opus〉를 치는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화면 속에 살아있다. 현실과 영상 간 괴리감이 가장 커져버린 순간, 갑자기 영화는 끝난다.
보면 볼수록 그가 이 세상에 더는 없다는 게 실감 나진 않는다.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처럼 여러 번 극장을 찾는 이도 있으리라. 그의 음악을 되새기기 이전에 그가 영면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진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팬이라면 그가 남긴 음악을 찬찬히 되새기며 거장을 떠올릴 만하다는 식상한 말을 할 준비도 아직 되진 않았다. 이젠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른 봄엔 그가 생각날 텐데, 생은 유한하다지만 그는 왜 먼저 가버린 걸까. 마침내 작별하기엔 내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關心)_Kino Psycho] 2024.01.15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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