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먼저 일본어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이 영화에도 많이 나오는 일본식 말 표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은 "미안합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같은 말을 평소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대사에서도 이런 말이 너무나 자주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일본 영화가 거슬리게 되었다. 왜 그리 자주 하는지? 이런 정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외국인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물론 진심 어린 사과를 할 때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뭔 놈의 “쓰미마셍(미안합니다)”이 그리도 자주 나오는지. 공공장소에서 내 존재를 알리는 관습적인 표현으로 시작해서, 심지어 고맙다는 뜻도 미안하다는 말로 전할 때가 있으니 의아하다. 이 모든 표현이 결국 영어 자막으론 “Sorry”로 퉁치며 바뀌게 되는 순간엔 결국 한국어로 다시 바꾸어 단어 뜻 그대로 이해할 수 밖엔 없다.
‘왜 자꾸 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자백을 하나?’
두 번째로 자주 접하는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다. 특히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나를 소개할 때 지금껏 봐온 일본 영화에선 이 문장이 참 자주 나왔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 주인공은 새 직장을 옮길 때마다 곧잘 이 말을 쓴다. 이 말도 일본 영화에서 많이 나오면 속이 부대끼곤 한다.
내가 왜 처음 보는 너한테
나를 부탁해야 하니?
속으론 현타가 생기며 반문하게 된다. 고지식하게 단어 의미에 따라서만 따져보면 이 문장에선 나보다 상대를 높인다. 이런 표현이 과연 한국어에서 나올 만한 자연스러운 어법인지 의심되곤 했다. ‘한국인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어색한 사이에서 말문을 틀 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을까?'
왠지 유교가 지배했던 옛날 옛적엔 이런 말을 쓰지 않았을 것 같아서 혹시나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식 어법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흔적인지 궁금했다. 생뚱맞은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언어학 쪽 기원을 찾아보려 인터넷을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요리조리 검색해 봐도 모조리 일본어 회화 번역 결과만 쏟아져 나온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은 각각 공황장애(Panic Disorder), 월경전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을 가졌다. 이들이 각자 증상 때문에 직장 생활 중 고통받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이 와중에 저 두 문장을 이들이 반복할 때마다 속으론 그들이 애틋하고 안타까웠다. 각 장애의 발병 원인은 다르겠지만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였다. 두 장애 모두 어떻게 생겨난 건진 모르지만 사람들과 엉켜서 눈치를 볼수록 고통은 심해지는 병 아닌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증상이 타인 앞에서 드러날 때 당사자가 느끼는 수치심, 부끄러움은 이차적 고통이다. 이런 아픔을 공감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남 같지 않으리라. PMS로 인해 갑자기 상식 이상으로 화를 폭발하거나 회사 책상 앞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면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현명할까?
자의식이 뚜렷한 성인이 사회생활 중 이런 실수를 하면 외부에서 지적을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쉽다.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벌주기, 실수한 장소를 벗어나기(사직서 작성), 극도로 예의를 갖추어 사과하기, 간식 돌리기. 살면 살 수록 여러 대안들을 조금씩 몸에 익힐 순 있겠다. 우리 가엾은 여주인공은 이런 뒷수습을 몸소 해내며 꿋꿋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젊은 남녀는 각자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안은 채 가끔은 직장에서 충돌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들이 몸을 담은 회사는 가끔 장애로 인한 발작을 해도 이를 엄격히 문제 삼지는 않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둘은 아주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의 고충에 대해 뒤늦게나마 안 후에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조력한다.
영화 속 클라이맥스는 깊은 밤, 우주를 모형으로 만든 구조물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모여 깊은 밤 새벽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인생에도 밤이 깊어 새벽이 오는 순간. 삶의 무게가 가장 클 때 위로가 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쓰디쓴 하루도 조금은 더 견딜 만하지 않을까.
다만 이 영화에선 너무나 동화적으로 소위 일본식 결말을 그린다는 게 아쉽다. 주인공이 마치 회사 조직의 일원이 되어 안착한 듯 단체 활동을 편안히 해내며 미소 짓는 장면이 다시금 작위적으로 느껴져 불편했다. 이 또한 일본 감성에 젖어들기 어려운 일개 관객의 시선이니 감상엔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감옥 같은 조직에서 현생을 버텨내기 힘들어하는 젊은이에겐 울림을 주리라. 직장에서 누군가를 대면하고 인사하기가 공포스럽다면, 실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적받기가 사형 선고처럼 느껴진다면, 정신과 약을 달고 살며 도살장 끌려가듯 출근을 반복한다면 영화 속 여 주인공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솔직히 그녀는 PMS로 힘든 것보다도 평소 다수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고군분투하느라 번 아웃(Burn-Out)이 온 듯해서 더욱 안타까웠다.
만약 그녀가 현실을 살아간다면 응원해주고 싶다. 당신 참 씩씩하다고, 응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