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초이 Nov 09. 2023

봉쥬르 브뤼셀!

2주살이 in 브뤼셀, 벨기에

10월 29일 일요일, 인생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 10월 초 1년간 준비했던 스위스인 남편과의 결혼식을 한국에서 성황리에 끝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오른 여행길이었다. 결혼 준비하는 내내 유럽으로 출국하는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냈는데 막상 갈 때가 되어 짐을 정리하다 보니 마음 한켠이 싱숭생숭했다. 이제 삶의 터전이 더 이상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좀 생경하기도 하고 또 한 번 정든 곳과 익숙한 일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도 들어서. 그래도, 딸 사랑이 지극하신 우리 집 김여사님을 위해 앞으로 몇 년간은 최소 연 1회는 한국으로 나오기로 약속했으니 섭섭한 마음은 잠시 뒤로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스위스에 정착하기 전 유럽에서 갖는 여유를 즐겨보자 다짐하며 -- 첫 번째 목적지로 찍은 곳은 aka 유럽의 심장,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벨기에에 먼저 도착해 있던 알파카 남편이가 마중길에 사 온 꽃.  그래도 먼 길 왔다고 꽃다발은 또 엄청 크게 만들어왔네 ㅎ

유럽 북서쪽에 위치한 벨기에는 인구 1100만의 중소국가로 흔히 이웃하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와 묶여 베네룩스(BeNeLux)로 통칭되기도 한다. 벨기에는 한국인들에게 영국, 프랑스나 이탈리아만큼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는 지정학적 위치와 중립성으로 유럽연합(EU)의 행정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그러한 만큼 수도인 브뤼셀에는 굉장히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어 나같이 멀티컬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곳이다. 


내 경우엔 이미 2019년 겨울에 브뤼셀을 한차례 방문 했어서 더욱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아끼는 벨기에인 친구 사라의 결혼식이 11월 초에 있을 예정이라 참석을 위해 서둘러 브뤼셀로 향했다. 남편 역시 직장 본사 사무실이 브뤼셀에 위치해 있어서 2주간 드넓은 오피스에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것이라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었다. 



브뤼셀 시내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 얀 주머니에서 갑자기 커다란 열쇠뭉치를 꺼내더니 철컥철컥하며 대문을 열자마자 ‘에밀리 인 파리’에서나 보던 오래된 프랑스식 건물내부가 나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들리는 나무판자 삐걱대는 소리와 세모난 지붕에 어슷하게 붙어있는 기울어진 창문들. 방 하나 건너 서로 벽을 두고 붙어있는 주방과 욕실. 성냥개비에 붙인 불을 가스구멍에 옮겨야 작동되는 가스레인지. 세탁기 대신 방구석 한쪽에 느닷없이 자리 잡고 있는 흰색 디지털 피아노. 뭔가 이상한 구석이 많은데 자기주장들이 뚜렷해서 마음에 들었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친 집주인 할아버지의 인심 좋은 웃음까지. 앞으로 2주 동안 이 집에서 잘 지내다가 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 


장거리 여행으로 쌓은 여독을 한껏 녹이고 일어난 다음날 오전.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보며 상쾌한 공기를 마실 때만 해도 브뤼셀 날씨가 그렇게 극악무도 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지...

아침 일찌감치 사무실로 출근해 버린 남편이 와는 별개로 느지막하게 일어난 나는 산책 겸 동네 주변 탐색차 거리로 나왔다.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미친 듯이 바람이 불더니 빗방울이 공기 중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대충 입고 나왔던지라 찬 바람에 식겁해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 또 금세 비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빼꼼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패턴이 몇십 분 내로 계속 반복돼서 유심히 하늘을 들여다보니 어찌나 구름이 빨리 지나가던지, 누가 구름 지나가는 속도를 빨리 감기 해놓은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유럽인들 사이에서 벨기에 날씨는 날씨 안 좋기로 유명한 영국보다 악명 높다고... 지난번에 벨기에에 있었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이번에는 오자마자 이 무시무시한 날씨부터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었다.    


심상치않게 흐린 브뤼셀의 가을.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유럽은 예쁘고 축축하고 어두운 분위기마저 느낌있다 (아직까지는)!  


유럽에 오게 되면 여유시간을 활용해 이것저것 해보려고 생각했던 것들 중 하나가 '요리하기'다. 엄마가 집밥 해 먹는 걸 워낙 강조하기도 하고 요리를 기깔나게 하는 언니의 스킬이 부러웠어서 늘 마음속에 품고만 있다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보려고 교보문고에서 요리책도 공수해 왔다 ㅎ 유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다가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찾다 보니 장르는 자연스레 양식으로 고정. 이후에 좀 더 익숙해지면 베이킹도 해보고 디저트도 만들어보고 다양한 장르로 확장시켜 볼 계획이다.  



벨기에에서 마트는 처음 가봤는데, 전에 스위스에 3개월 살면서 장 보러 다닌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식재료 찾기가 굉장히 수월했다. 유럽에 있는 마트는 구성이 대략 비슷비슷한 듯. 종류별로 다양한 허브들과 값싸고 질 좋은 와인, 치즈, 살라미가 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걸 보니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다들 카드결제하는 세상에 버젓이 유로화를 들이밀며 아줌마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바쁘게 쓸어 넣을 때 좀 민망하긴 했지만 (껄껄..) 어쨌든 장보기를 무사히 완수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집으로 향했다.  


대망의 첫 번째 메뉴는 비프 부르기뇽 (Boeuf bourguignon).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에서 먹기 시작한 소고기 스튜로 냄비에 레드와인 한 병을 콸콸 다 부어가며 소고기를 졸여내는 것이 특징. 벨기에에 오기 전에 집에서 실험 삼아 언니랑 같이 만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엄청 맛있게 만들어져서 레시피가 생생할 때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만들 때 보다 양을 작게 한 탓에 레드와인이 좀 남아서 요리하는 동안 홀짝홀짝 마셔대니 기분이는 금세 하늘로! 소고기가 와인에 졸여지는 동안 보사노바를 연이어 들으며 신나게 야채를 볶다가 냄비에 한데 넣고 푹 끓였다.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 앞에 흥 잔뜩 들어간 부르기뇽을 냄비째로 가져다 놓으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ㅋㅋ 다행히 음식은 맛이 꽤 괜찮았고, 얀의 동료로부터 선물 받은 튀지니산 와인으로 본격적인 신혼생활을 축하하며 잔을 채웠다. 앞으로도 자주 맛있는 저녁밥 해줄게!


리얼(?) 성냥으로 요리하기 - 생각보다 성공적이다 :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