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97 한겨울 아침의 꿈
한여름 밤의 꿈
아침마다 내 몫의 미션을 완수하고
바람 차가운 길을 부지런히 걸어
내가 나에게 건네는 한 잔의 커피는
아침햇살처럼 따사로운 위로이고
꿈과도 같은 다정한 위안입니다
커피 향 그윽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나오기를 기다리며
맞은편 빈 의자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으로 찍어봅니다
빈자리에 내려앉아 머무르는
반짝 햇살은 그대로 두고
적막한 침묵만을 살며시 걷어내고는
희고 고운 얼굴에 순한 마음을 지닌
미소 그윽한 친구 한 사람
거기 앉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대
이리 와 여기 앉아요
겨울 햇살 눈부시게 마주하고
사이좋게 커피 한 잔 하며
한겨울 아침의 꿈을 함께 꾸어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샤갈의 '한여름 밤의 꿈'
그리고 그대와 나의
한겨울 아침의 꿈
뜬금없어 보이면서도
은근 괜찮은 조합 아닌가요
셰익스피어의 낭만적인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인간과 요정들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마법의 세계를
무지갯빛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며
유쾌하게 그려낸 재미난 작품입니다
테세우스와 히플라테
두 사람의 결혼을 앞둔 한여름 밤
축하 연극을 연습하는 마법의 숲에서
젊은 연인들의 쫓고 쫓기는 사랑을
요정들이 마법으로 짠~ 이루어주며
떠들썩하고 익살스럽게 펼쳐지는
반딧불 반짝이는 한여름 밤
숲 속의 꿈같은 이야기인데요
유복한 환경에서 그늘 없이 자란
금수저 음악가 멘델스존은 어릴 적부터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좋아했다고 해요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감동과 영감을 받아
'서곡'을 작곡했답니다
펠릭스(Felix)라는 이름처럼 행운아인
멘델스존은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섬세한 표현으로 몽환적인 분위기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작곡해
나의 칸토르(음악 선생님)라 부르며 따르던
피아니스트인 네 살 위 예쁜 누나 파니와 함께
피아노 이중주로 연주하기도 했답니다
그로부터 17년 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부탁으로 12곡의 연극용 음악을 작곡해
서곡과 함께 포츠담 궁전의 무대에 올려
찬사를 받았다고 해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13 개의 곡 중에서도
'서곡' '스케르초' '간주곡' '녹턴'
'결혼행진곡' 등이 사랑받으며
자주 연주되는데요
'결혼행진곡'은 연극의 끄트머리에서
주인공들이 서로의 사랑을 찾아
합동결혼식을 올릴 때 나오는 음악으로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연주되기도 하며
웨딩음악으로 자주 쓰여
귀에 익은 곡입니다
관현악곡 '녹턴'은
호른이 연주하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밤의 멜로디로 시작되어
연인들이 요정의 마법에 빠져
숲 속에서 흩어졌다가
잠드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달콤하게 흐르는 '녹턴'을 들으며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환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한겨울 아침의 꿈을
커피 한 잔과 함께 누리고 싶어요
저기 저 빈자리에 그대를 앉히고
그대와 마주 보며 마시는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로
겨울 아침의 차가운 기운을
잠시 녹이고 싶습니다
기억하나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드미트리우스의 대사
'우리가 깨어있긴 한 거야?
난 아직도 잠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 '
정말 그렇지 않나요
지금 우리도 나른한 잠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마법의 꽃즙으로 사랑에 눈먼
여왕 티타니아와 못생긴 당나귀 인간 바텀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행복 미소를 그려낸
샤갈의 그림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이~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사랑의 마법에서 풀려난 여왕처럼
'당나귀를 사랑하는 꿈을 꾸었다'라고
탄식하며 중얼거릴지도 몰라요
어떻게 그런 못난이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이 아침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려면
어설프더라도 달콤한
꿈 한 조각이 필요합니다
깨고 나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망하고 부질없는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