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어
나만의 드라마를 찍습니다
무언가 발끝에 밟히는 듯해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어머나 이게 뭐람~
운동화 끈이 풀려 있지 뭐예요
발부리에 끈이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나
그나마 제법 내공이 쌓여
넘어지지 않았으니 천만다행
그러다 히죽 웃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바로 이 순간 만찢남이 스르륵
그윽한 눈빛 미소 날리며
등장할 차례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잔잔히
로맨틱한 BGM도 흘러나와야죠
우연히 이 길을 지나던 중이라며
초록 나무그늘 아래 놓인
빈 의자에 여주인공을 앉히고
그 앞에 단정히 무릎 꿇고
운명처럼 풀어진 운동화 끈을 단단히
야무지게 묶어주는 장면은 어디까지나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
오늘도 나 혼자
나만의 드라마를 찍습니다
셀프 드라마의 좋은 점은
언제라도 내 맘대로
여운 남기는 엔딩곡 따위
그까이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변덕스럽게 제멋대로 엔딩~
맥락 1도 없이
급마무리해도 된다는 거죠
잘 묶인 운동화 끈을
일부러 풀어놓을 이유도 없고
멋지고 잘생기고 분위기 좋은 남주가
순정 만화를 찢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적절 타이밍을 노릴 필요도 없으니
그저 빈 의자 하나 있으면
충분합니다
털썩 주저앉아 내 손으로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
또박 걸음으로
가던 길 가면 되니까요
나의 드라마는
눈물 찔끔 멜로도 아니고
오락가락 시공 초월
타임슬립도 아니지만
잘났든 못났든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현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