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82 참 드물고 귀한 사람
블랙 사파이어처럼
저 하늘 아래 이 땅 위
어딘가에 묶이지 않은 존재가
그 무엇 하나라도 있을까요
이리저리 제맘대로 불어대는
바람 한 줄기도 결국은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오락가락
묶여 있는 존재인 것인데요
하얀 붕대에 묶여 있는
그녀의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이
유난히도 안타깝게 눈에 들어옵니다
샤인머스킷 포도잼을 만들다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다쳤다는 그녀는
샤인머스킷의 초록으로 싱그럽고
보랏빛으로 영근 블랙 사파이어처럼
드물고 귀한 사람입니다
알알이 포도알처럼 맺힌
다정다감한 마음을
알뜰살뜰 재주 많은 손으로
슬며시 전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그녀의 두 손가락이
안쓰럽고 안타깝습니다
부지런해서 분주하고
야무지게 솜씨까지 좋은
그녀의 하얀 손이 아마도
잠시 쉬고 싶었나 봅니다
아파서 휴식 중인 손을 따라
마음도 함께 쉬면 좋을 텐데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마음을 기울이며
종종걸음을 걷고 있을 것 같아요
삼시 세끼 밥때 놓치지 않고
밥과 빵을 좋아하지만
과하지 않게 알뜰히 챙겨 먹으며
사이사이 간식도 줄줄이
과일과 커피와 쿠키 하나 정도
신상 과자 한 조각은 놓치지 않고
제철과일은 촘촘히 챙겨 먹는 내가
지난여름 유난히 눈이 가던 과일이
블랙 사파이어라는 이름을 가진
가지포도였거든요
물론 내게는 좀 비싼 편이어서
자주는 아니고 맛보기로
두어 번 손을 내밀었는데요
블랙 사파이어라는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과일이었습니다
빈속에 집 떠나지 말고
울면서 길 떠나지 말자는 게
내 삶의 수칙이 된 지 오래인데요
쪼잔하게라도 내 것 내어주고
남의 호의도 사양하지 않고
줄 거 있을 때 선뜻 주고
받을 것 냉큼 받으며
이왕이면 즐겁고 유쾌하게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살자는 게
내 희망사항이니까요
즐겁게 만니 신나게 놀다가
기쁜 마음으로 기분 좋게 헤어지는
그런 인연도 참 귀하고 좋은데
지난여름 내가 만난
블랙 사파이어가 그랬어요
가지포도라고 불리는
블랙 사파이어는
씨도 없고 달콤 아삭 탱글
비타민도 듬뿍 품고 있어서
지난여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좋은
재미나고 독특한 과일이었죠
까맣고 기다란
마녀의 손가락 닮아
위치핑거 그레이프라고도 부른다기에
후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게는 천사 같은 그녀의 손이
지난여름 블랙 사파이어로 떠오르는데
마녀의 손이라니 그 또한 반전이고
반전이 주는 재미는 언제나 쏠쏠하니까요
마녀의 손가락 포도라니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법소녀일 거라고
혼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녀의 아픈 손이
얼른 낫기를 바라는 마음 반
천천히 곱게 상처가 아무는 동안
푹 쉬기를 바라는 마음도 반~
언젠가 그녀가 건넨
노란 핫팩의 따스함을 기억하며
눈처럼 하얗고 따뜻한
손난로 핫팩 하나 살며시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