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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09. 2024

초록의 시간 885 다이어리를 준비하며

길 위에서

다꾸족이 아니라

다이어리를 아기자기 꾸며가면서

제대로 써본 은 없습니다

그러나 습관처럼

해가 바뀔 무렵이면

 다이어리를 준비합니다


마음만 서너 걸음 앞서가며

책을 읽지도 않을 거면서

책을 사고 '겨울방학' 북커버에

'길 위에서' 펜마크까지 사는 것도

비슷한 습관인 듯합니다


참 쓸모없는 습관이긴 하지만

마음의 준비라고나 할까요

학생시절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책상 위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내친김에 서랍 정리까지

말끔히 하는 것과도 비슷하게

무척이나 진지합니다


 다이어리를 준비하고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다이어리를 찾았습니다

다이어리는 새것처럼 비어 있었으나

그 안에서 예쁜 편지를 찾았으니

뜻밖에 즐거운 득템입니다


친구님의 편지 구절이

정겹고 따사롭습니다

~이제 우리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따스이 위로해 주고

더 편안히 기대기로 해요~


편지를 다시 읽다 보니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바스락 엽들이 떠올랐어요


바닥에서 이리저리

우르르 굴러다니는 낙엽들도

커다란 마대자루에 구겨져 담겨 있는

소리도 없고 보이지 않는 낙엽들도

그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차디찬 겨울을 견디는 모습이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낙엽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는데

그 곁에 서 있는 내 그림자는

다만 혼자였으니 

홀가분하면서도 왠지

문득 쓸쓸~


나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내 곁을 온전히 내주며

맘껏 기대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다가

그민 웃고 말았죠


가만 생각해 보면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따로 또 같이

여럿 안에서도 언제나

혼자인 느낌이었습니다


여섯 남매의 맏이였는데도

동생들을 업어 준 기억도 없고

함께 다정히 놀아준 기억도 없어서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혼자 책 읽고 그림 그리며

내 맘껏 상상하고 노는 게

훌훌 자유롭고

편하고 졸았어요


엄마는 어린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어려서부터 혼자인 게 습관이 되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혼자 노는 게 편하고

혼자 상상하는 게 좋았습니다


일부러 목소리를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고

애써 웃지 않아도 되는

내 맘대로의 시간이 좋았거든요


그러는 사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덥석 안기는 법도

익히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면 울 엄마도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하셔서

올망졸망 아이들을

다정히 보듬어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셨어요

엄마 역시 엄마 노릇이 처음이라

서툰 엄마였을지도 모르죠


살며시 기대는 법을

배워가는 겨울입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내가 기대면 그 어깨가

나로 인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되어

오히려 힘이 된다는 것을~


서로의 짐이 아니라

서로의 날개가 되어

소리도 없이 팔락이며

함께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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