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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22. 2024

초록의 시간 893 재미난 상상

야속한 짝사랑

아주 어릴 적 

한밤중 잠에서 깨어

말똥구리도 아니면서

눈 말똥 생각 말똥거리며

그런 상상을 했었어요


엄지공주처럼 작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친구들이

뽀시락 조심스러운 소리를 내며

방안 어딘가에 숨어 지내다가

어두워지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거라는

재미나고도  엉뚱한 상상을 하며 

어둠 속을 빤히 지켜보곤 했어요


물론 그 쪼꼬미 친구들은

그림 동화 속에서 납작 엎드려

종알대며 울고  웃는 모습이었을 뿐

결코 소리를 내는 법도 없고

한 번도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갈래머리 소녀시절의 상상은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웠어요

책 속에서 만난 주인공들을

내 맘껏 그려보고는

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고

수줍은 연인이 되어보기도 하며

설렘으로 두근두근

혼자 웃고 울기도 하다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을 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다독이고

소설에나 나올법한 로맨틱함으

현실의 막막함을 견뎌냅니다


파란 하늘을 유유히 떠도는

무지갯빛 구름이거나

빛깔 고운 애드벌룬이 되어

바람 따라 둥실 떠다니는

재미난 상상이지만

야속한 짝사랑이기도 해요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이 되어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상상을 합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니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는

재미난 상상을 하며 웃어 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비대면 문 앞 배송으로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 하나 툭 떨구고

오다 주웠다~는 배송완료 문자

시크하게 남기고 휘리릭 사라지는

엉뚱 발랄한 상상을 하다가

푸후훗 기분 좋게 웃으며

오늘의 상상놀이

여기서 끄읕~


상상은 상상일 뿐

재미난 만큼 허무하고

야속한 짝사랑일 뿐이니까요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려

반짝이는 오색 꼬마전구들처럼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 들을

잠깐씩만 순간 한정으로 누려보는

상상의 기본 수칙은 지키기로 합니다

선을 넘으면 쓸데없는 공상이 되어

깨어날 때 제법 아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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