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습자 Jul 04. 2024

글을 쓰는 것은

왜구구단은

소설가 정이현은 박완서 작가를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태양 아래 까발리고, 공감하게 하고, 그리하여 위로받게 하던 작가"라고 평했다. 정말로 이 평처럼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내 몸이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작가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알고 위로받는다.


이윤주 작가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중 에세이가 술주정이 되지 않으려면 편에 이런 글이 있다.

"자기 연민에 중독된 사람의 이야기는 유익하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지루하다. 그렇다고 자신과의 거리가 너무 멀면 고유성이 사라진다. 내가 내 입으로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밀당을 멈출 수 없고, 자신과의 밀당은 결과적으로 타인과의 거리, 세계와의 리를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고유한 나'를 '이 넓은 세계' 어디쯤에 둘 것인지의 문제다. 나는 나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 고통이 놓일 위치를 치열하게 성찰해야 하는 사람이다.


장강명 작가의 미세 좌절의 시대 307쪽에 있는 글은 이렇다.

"왜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더 부담스러울까? 왜 말을 할 때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 정화되지 않은 수치도 쉽게 내뱉는 반면 글을 쓸 때는 조심스럽게 논리와 인용을 확인하고, 오류를 점검하게 될까? 애초에 글쓰기가 공적인 활동이라 그렇다.


세 글을 종합해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글을 쓰는 것은 샤워 후 밖에 나가는 게 아닐까? 직장, 공항, 예식장, 수영장, 쓰레기 분리수거장, 공원 등등 장소에 어울리는 옷 정도는 골라 입고 현관문을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 장소에 닿기는 어려워도 말이다. 현관문을 나선다는 것.

작가의 이전글 스물하나 스물다섯(장범준, 윤하, 자우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