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 왈 "당연히 맛도 있지만, 요리사가 요리한 의도가 맛으로 전해져야 돼요." 어린 왕자에서 여우 왈 "만약에 예를 들어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무소유에서 법정 스님 왈 "1300원어치의 소음에서 내리니 심신이 더불어 휘청거렸다. 서라벌은 간데없고 관광도시 경주가 차디차게 이마에 부딪쳤다.
여우 말이 맞다. 연인을 만날 때 진즉부터 부산을 떨어본 적이 있으니. 법정 스님의 표현은 잘못된 것일까? 경주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저렇게 말씀하셨으니. 다시 안성재의 평을 읽어 본다. "당연히 맛도 있지만, 요리사가 요리한 의도가 맛으로 전해져야 돼요."
요리사로서 (잘) 할 수 있는 요리에서 시작하는 요리사가 있었고, 손님의 이마에 부딪칠 맛에서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요리사가 있었다. 후자의 모습을 보여준 이들로 에드워드 리, 최현석, 최강록 등이 있다.
부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아주 고가의 사치품이나 여행도 식상함만을 안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우주여행을 가려하는 거라고 어디서 들었다. 요리의 정점에 서있는 백요리사들 - 팀 대결에서 어류를 선택한 백요리사들(이하 "최현석팀"이라 함) - 은 요리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할까?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방영분에는 작가와 편집자의 의도가 녹아있다. 흑백요리사 2차 공개분의 주제는 선명했다. 바로 "리더십"이다. 최현석팀은 "하향식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며 팀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최현석이 관자의 개수가 딱 맞다고 착각한 모습, 같은 편인 에드워드 리가 3 등분된 관자의 두께가 얇아 익힘의 정도를 걱정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여기서 리더 최현석은 관자의 한쪽 면만 아주 짧은 시간에 익히도록 지시했고, 부족한 관자의 양은 일부 관자슬라이스를 반으로 잘라서 100인분에 맞추자고 했다. 에드워드 리는 이 의견에 따랐다. 혹자는 여기서 소통의 부재를 느꼈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나에게는 불통으로 보이지 않았다.
손님에게 관자의 씹는 맛을 전하려 한 의도는 에드워드 리도 다른 팀원들도 당연히,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게다. 문제는 100명의 손님에게 이 의도를 적절하게 전하기에는 관자의 양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건 토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1박 2일에서처럼 출연진과 제작진이 협상해서 손님을 50명으로 줄이고 방송분량을 더 가져가는 방안이라면 모를까.
최현석팀의 초절정 고수들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팀원을 존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최현석이 아닌 다른 백요리사 - 한국어가 능숙했더라면 리더가 될 수 있었을 에드워드 리 - 가 리더였어도 이 팀에게 갈등과 혼란은 없었을 거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