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는 하룻밤이 지나면 다른 빵으로 변했나 싶을 만큼 맛이 떨어진다. 우선 고소하게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는 껍질이 사라진다. 그다음 습기를 머금은 말랑말랑한 속살에 밀가루의 달콤함이 밴 안쪽이 말라버린다. 그래서 사 온 날 바로 먹는다는 불문율을 지키는데, 이렇게 지키지 않아도 누구 하나 곤란하지 않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는 곤란해지는 약속보다 더 잘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고집스럽기 때문인 듯하다. - 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 빵과 불문율 중에서
팥밥은 끼니때가 지나면 - 아무리 쿠쿠 안에 있었다고 해도 - 다른 음식이 된다. 난 이걸 남겨서 뭐 하냐는 양의 음식을 먹어 치우기보단 다음 식사 때의 나에게 양보하는 편인데, 팥밥은 예외다. 식구 수대로 팥밥이 담긴 공기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어머니께 여쭌다. "다 푸신 거예요?", "아니, 조금 남았어.", "저주세요."
다음 날 딱딱하게 변한 바게트는 믹서기에 갈아 빵가루로 변화를 주면 된다. 맥 앤 치즈를 만들어 이 위에 뿌려 먹으면 맛있다(냉장보관으로 빵가루에 수분기가 있을 땐 프라이팬에서 수분을 날린 후 뿌린다). 더 남은 빵가루는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함박스테이크를 만들 때 넣으면 괜찮다.
그런데 갓 지은 때가 지나버린 팥밥은 방법이 없다. 팥밥은 그때 다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