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습자 Nov 03. 2024

읽는 재미 2

왜구구단은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소설 <행성어 서점>의 줄거리는 이렇다. 우주의 여러 행성들 간의 언어는 행성 여행자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 뇌에 만능 언어 통역기가 이식된 상태이기 때문에. 한편, 행성어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그 행성의 소수 언어로 쓰여 이 통역기로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서점을 찾고, 둘러만 본다.

  같은 작가는 <책과 우연들>에서 이 작품에 대해 '그 안의 내용은 이해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낯선 언어가 주는 이국적 경험만을 소비하려 한 자신의 외국 여행 태도를 그렸다고' 말했다.


  찾아가기 어려운 시골에 작은 규모의 빵집이 많이 생겨났다. 내 고향 시골 마을 인근에도 이 같은 곳이 있어 방문을 해보았다. 목적지 결정에 앞서 블로그 검색을 해 본다. 어느 포스팅의 제목은 이렇다. "## 베이커리 감성 카페, 시골빵, 소금빵 리뷰", "## 뷰맛집 시골 베이커리 카페 추천 %%%%"

  내 발길이 닿은 %%%%는 블로그 속 사진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위치가 그랬다. 그 사진들은 똑같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난 이 빵집이 마을 구석에 자리한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밭과 시골집이 어우러진 마을 중간에 빵집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에서 주문을 하고, 빵과 음료를 전해받았다. 이 풍경이 우리 회사 앞과 다르지 않았다. 시골 감성이란 무엇일까? 시장주의란 무엇일까. 박완서 작가의 <주말 농장> 속 문장이 떠올랐다.


  농사꾼이 한 여름의 폭양을 무릅쓰고 몇 뙈기의 밭, 몇 마지기의 논에 목숨을 매달고 농사를 짓는 옆에서 오락 삼아 취미 삼아 농사짓기 놀이를 벌인다는 건 농사꾼에 대한 얼마나 큰 모욕이요, 그들의 성실에 대한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유린일까. 저녁나절 농사꾼들이 넓혀놓은 농로로 자가용을 몰아 그 골짜기 마을을 벗어나면서 우리가 그날 하루 얼마나 큰 해독을 그 마을에 뿌리고 떠나나 하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편, 아도르노 <문화 산업에 대한 재고>에 있는 글로 며칠 전 브런치에서 읽은 글도 옮겨본다. 세상 사람들이 기만당하기를 원한다는 말 일찍이 그 말이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참이 되었다. 사람들은 속임수에 푹 빠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기만이 찰나의 만족이라도 보장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기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만을 원하다.


   끝으로 읽는 재미? 에 대한 답은 이태준 작가의 글로 대신한다.


  소설도 다른 모든 예술과 함께 '표현'이란 점이다. (중략) 내용에만 소설의 전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략) 인생을 소설로 다루는 작가의 솜씨를 맛볼 줄 알아야  현대소설을 완전히 음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물론 내용이란 엄연한 존재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소설의 위기다. 그림은 선과 색채만 있으면 그림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소설은 내용이 없으면 그냥 문자일 뿐이다.- 이태준 작가의 산문집 <무서록> 소설의 맛 중에서 -



작가의 이전글 봄꽃과 가을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