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팥밥과 불문율

왜구구단은

by 복습자

바게트는 하룻밤이 지나면 다른 빵으로 변했나 싶을 만큼 맛이 떨어진다. 우선 고소하게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는 껍질이 사라진다. 그다음 습기를 머금은 말랑말랑한 속살에 밀가루의 달콤함이 밴 안쪽이 말라버린다. 그래서 사 온 날 바로 먹는다는 불문율을 지키는데, 이렇게 지키지 않아도 누구 하나 곤란하지 않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는 곤란해지는 약속보다 더 잘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고집스럽기 때문인 듯하다. - 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 빵과 불문율 중에서


팥밥은 끼니때가 지나면 - 아무리 쿠쿠 안에 있었다고 해도 - 다른 음식이 된다. 난 이걸 남겨서 뭐 하냐는 양의 음식을 먹어 치우기보단 다음 식사 때의 나에게 양보하인데, 팥밥은 예외다. 식구 수대로 팥밥이 담긴 공기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어머니께 여쭌다. "다 푸신 거예요?", "아니, 조금 남았어.", "저주세요."


다음 날 딱딱하게 변한 바게트는 믹서기에 갈아 빵가루로 변화를 주면 된다. 맥 앤 치즈를 만들어 이 위에 뿌려 먹으면 맛있다(냉장보관으로 빵가루에 수분기가 있을 땐 프라이팬에서 수분을 날린 후 뿌린다). 더 남은 빵가루는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함박스테이크를 만들 때 넣으면 괜찮다.


그런데 갓 지은 때가 지나버린 팥밥은 방법이 없다. 팥밥은 그때 다 먹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읽는 재미 2